사랑의 스펙트럼에서 함께 빛나야 할 장애인의 성(性)

입력
2022.08.24 21:00
25면

천자오루 지음,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우영우의 성장 과정만 보여주면 되지 왜 굳이 로맨스를 집어넣냐고. 나는 K드라마라면 모름지기 로맨스가 들어가야 한다고 웃으며 답했지만 사실 그 말로 충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성장을 보여줄 때 사랑만큼 강력한 한 방이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의 수만큼 취향도 다양하고 그 사람들이 만나 하는 사랑도 다채롭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계급, 인종, 지위, 국적, 성별과 상관없이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가 낯설게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다. 장애인은 신체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 사랑에 대한 욕망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생각할 때가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의 소재로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의 연애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법정 사건은 낯설고도 무거웠다. 지적장애를 가진 신혜영은 피해자로 비장애 남성 양정일은 피의자로 성폭력(중강간) 혐의 재판이 진행된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대만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의 이 책은 장애인과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했다.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성생활,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해도 되는가? 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왜 늘 유난스러운 주목을 감당해야 하는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을 펼치면 답하기 힘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어느 질문에도 명확하게 맞고 틀렸다고 답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쉽게 사랑했고 편하게 사랑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장애를 어느 정도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사랑과 결혼 그리고 2세를 계획한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 논의는 고상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장은 외면하기 힘들었고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어 논의됐으면 했다.

천자오루 작가의 이전 책 '침묵: 타이완 특수학교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이자 작가의 친구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는 천자오루를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시도만으로 얼마나 삶이 아름다워지는지, 사랑이 얼마나 치유의 힘을 가졌는지, 연애 이야기로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세계는 스펙트럼이다. 모두 무수히 다른 빛깔을 가지고 산다. 남성과 여성, 장애와 비장애, 어떤 것에 속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저 우리로 존재한다. 카테고리라는 프레임을 걷어내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잊지 않아야 한다. 모두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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