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가 있어야 사람이다

입력
2022.08.15 22:00
27면

우리는 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삶'이라는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만 가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을 좀 더 품위 있고 의미 있게 가꾸어 좋은 문화 환경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낯 뜨거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삶을 품위 있고 의미 있게 가꾸어 나가는 첫걸음은 무엇일까? 동양 고전 중의 하나인 '순자'의 '권학' 편에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지만, 이를 버리게 되면 금수와 같은 짐승의 단계에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순자의 말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짐승의 단계로 타락하지 않고, 짐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다움' 즉 '인격'을 갖추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치적 측면에서 짐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인간다운 삶'을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갖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묻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깨어 있는 마음', 즉 '양심'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마음이 작동할 때, 비로소 인간이 갖추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고, 자신만의 생존과 자기중심적 이기심을 넘어서 타자와 더불어 살아감을 고민하는 공존의 논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공정성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책임감 있는 인격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접어 두고 작동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다른 사람의 안위는 불문하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며 사회적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더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누리는 부와 명예의 이면에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했던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반성도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의미 있고 사람답게 살아가려 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양심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이기적 욕구와 욕망에 함몰되어 이 마음의 작동이 멈추게 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부단히 자신과의 투쟁을 벌이는 수양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자가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이겨 나가는 극기(克己)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가정교육에서 "염치(廉恥)를 아는 사람이 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염치란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 '염치'란 말의 가치를 쉽게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맹자가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박승현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