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보다 훨씬 싼 군 마트 개방...주민들은 '화색', 상인들은 '울상'

입력
2022.06.23 20:00
19면
대전 유성 자운대 등 전국 군마트 6곳 일반에 개방
시중보다 최대 50% 이상 저렴해 시민들 몰려
상인들은 코로나에 군 마트까지 더해 매출 떨어져
유성구, 군에 개선 요청...이렇다 할 답변 없어
대전경실련, 일반인 개방 철회 촉구 회견 예정

"OO맥주는 없네. 벌써 품절인가."

지난 22일 오전 대전 유성구 자운대 쇼핑타운 내 주류 판매대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부인에게 건넨 말이다. 오전 10시 개점 직후부터 군인 가족과 인근 지역주민들이 싹쓸이해, 두 시간도 안 돼 물건이 동났다.

국방부 국군복지단이 운영하는 자운대 군 마트는 평일 오전이었지만 밀려든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맥주뿐 아니라 매장 진열대 곳곳에는 비어 있는 상품들이 적지 않았고, 계산대 3곳은 계산을 위해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로 북적북적했다. 국군복지단은 조성한 자운대에서 군은 군 마트만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는 민간인에게 임대했다.

군 마트는 원래 현역장병과 군무원, 국방부 공무원, 10년 이상 복무하고 전역한 군인, 국가유공자, 국가보훈대상자 등만 이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역주민의 편의 등을 위해 올해 1~4월 2단계에 걸쳐 자운대를 비롯해 경남 창원과 진해, 경기 평택, 강원 춘천, 전남 장성 등 대규모 군 시설이 있는 6곳의 군 마트를 주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3단계로 8월 중 충남 계룡에 있는 3군 통합기지 계룡대 내 군 마트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역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요구에 의해 법적 근거를 갖고 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부담 없고 유통 마진 없어 저렴

시민들 사이에서 자운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주류와 장류, 음료수, 유제품 등 시중 슈퍼마켓에서 취급하는 상품 상당수를 최대 50% 이상 싸게 판매하기 때문이다. 임대료 부담이 없고, 제조업체와 직접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해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애 가능한 일이다. 가격 할인율 입찰제를 통해 납품 단가도 대폭 낮췄다. 이날 자운대 군 마트에서 만난 한 주민은 "3월 개방 이후 시간이 되면 계속 오고 있는데, 택시를 타고 와도 물건 값이 워낙 싸서 돈을 더 아낄 수 있다"고 흡족해했다.

자운대 군 마트는 지난 3월부터 주말과 주중 관계없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하지만 "물건이 일찍 품절되고, 계산에도 최대 30분까지 소요된다"는 군인과 그 가족들의 민원 때문에 지난 4일부터는 주중에만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마트에서 일하던 직원은 "평일 손님은 대부분 일반인이라고 보면 된다. 군인이나 군인가족은 거의 주말에만 이용한다"며 "주류가 가장 인기가 있고, 식품 부자재와 가족들 간식도 많이 사 간다"고 귀띔했다.

자운대 군 마트로 인근 주민들이 몰리면서 지역 슈퍼마켓 업주들은 매출이 떨어져 울상을 짓고 있다. 자운대 인근 신성동의 한 슈퍼마켓 업주는 "군 마트가 (일반인에) 개방된 이후 매출이 30~40%는 떨어졌다"며 "술을 공장 출고가 이하로 팔고, 다른 물건도 많이 싸니 손님을 뺏길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 다른 슈퍼마켓 직원은 "인터넷이 발달한 상황에서 코로나 때문에 주문 배달이 많아져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자운대 군 마트까지 개방되니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우리 같은 평범한 가게는 버텨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슈퍼마켓 등 소매상들의 한숨이 커지자 대전 유성구는 지난달 중순 국방부 국군복지단에 공문을 통해 자운대 군 마트 운영 개선을 요청했지만 이날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신하철 유성구 일자리정책실장은 "국군복지단은 일반인도 군 마트를 이용토록 한 훈령 등을 내세워 자운대 군 마트를 개방했다는데, 행정기관은 권한이 없다 보니 당장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조만간 복지단 관계자와 직접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며 소상공인과 함께 대응에 나설 움직임이다.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광진 사무처장은 "군 마트 개방은 지역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철회해야 한다"며 "빠르면 다음 주 중으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지역사회에 알려 공론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군 마트 운영에 변화를 줄 의지를 갖고 있지만 개방을 철회할 의사는 없다. 지역 소상공인 업체의 반발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이용일 분리와 판매 수량 제한, 가격 차별화 등을 검토하는 등 대책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대전= 최두선 기자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