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14일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 '국민 MC' 송해의 동상 옆엔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명의는 '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 성소수자들이 가부장 사회의 한복판에 섰던 원로 연예인을 기리며 거리에 추모 현수막을 걸기는 이례적이다.
어떻게 뜻이 모였을까. 이 현수막을 제작한 권순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사회연대국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종로에 좀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성소수자들도 낙원동 거리에서 선생님을 자주 마주쳐 동네 어르신 같은 친근함을 가지는 이가 많다"며 "부음을 듣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뭐라도 하자' 싶어 현수막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추모 현수막 제작을 제안하자 한 시간도 안 돼 지역과 업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연령대가 다른 10여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현수막은 송해의 영결식이 치러진 10일 내걸렸다.
종로 성소수자와 송해의 인연은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송해는 2018년 KBS2 토크쇼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여기(종로)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는데 젊은이들도 남녀 쌍쌍으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임에 대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있죠?"라며 종로의 성소수자 축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옛날 같으면 어른들한테 혼나잖아요? (그런데 이젠) 어르신들이 나와서 손뼉도 쳐준다"며 "'이런 변화도 체험을 해보는구나'란 생각에 배울 게 또 많다. 그러니까 참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축제를 '혐오'의 시선이 아닌 '새로운 문화'로 바라보며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종로 낙원동은 송해의 '제2의 고향'이자 1970년대부터 성소수자들의 해방구로 통했다. 송해가 운영한 원로연예인 모임 '상록회' 사무실에서 2~3분 거리에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친구사이'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권 국장은 "성소수자들은 지난 50여 년간 종로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이라 현수막에 '종로의 이웃'이란 말을 꼭 넣고 싶었다"며 "성소수자 '일동'이라는 표현이 과한 건 아닐까 잠깐 고민했지만, 송해 선생님께 다들 한 때라도 위안받은 적이 있으리라 싶어 그렇게 넣었다"고 제작 과정을 들려줬다.
8일 세상을 떠난 송해를 향한 추모 민심은 송해길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송해 동상 옆엔 하나미용원 등 낙원동 상가 입주민들이 갖다 놓은 큰 조화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송해가 생전에 즐겨 찾았던 낙원동 사우나를 운영하는 진은순씨는 "코로나 이후엔 잘 안 오셨지만 그 전에 선생님이 목욕탕에 들러 주민들과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시곤 했다"며 옛 일을 들려줬다.
송해 동상 옆엔 '송해... 그리다'는 문구가 적힌 추모의 공간이 마련됐다. 작은 TV 속에선 송해가 마이크를 잡고 구수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민과 늘 함께 한 '시대의 어른'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행렬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 방세화(44)씨는 "제 추억 상당 부분에 송해 선생님께서 함께 계셨다. 일요일마다 선생님 목소리 안 들은 사람 없잖나. 모든 분의 휴식처였다"며 "공기같이 함께 있던 분이 사라지니 그 소중함 더 와 닿아 친구들과 함께 찾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