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여야가 서명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야 합의 당일인 22일 대통령직인수위와 국민의힘은 합의를 존중한다고 했다. 24일 윤 당선인이 "우려"라는 말을 입에 올린 직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합의 당사자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마저 25일 재합의를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흘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윤 당선인은 대선 이후 '검수완박' 논쟁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곧 행정부 수장이 될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국회 입법권 침해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었다. 윤 당선인이 검찰 출신인 것도 침묵의 이유였다. 검수완박을 비판하면 민주당이 '검찰공화국 만들기 프레임'을 씌울 터였다.
중재안이 나온 이후 윤 당선인은 배현진 대변인을 통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4일 "일련의 과정들을 국민들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고 했고, 25일엔 "정치권 전체가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 삶을 지키는 정답을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주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중재안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윤 당선인의 '복심'인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25일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 정신을 크게 위배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해 검수완박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윤 당선인이 침묵을 깬 것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본질적인 우려가 큰 데다 중재안이 선거·공직자 범죄를 검찰 직접 수사 대상에서 뺀 것을 불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검사로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던 윤 당선인이 보기엔 정치인들이 검찰의 수사망을 피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를 주도한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과 물밑 소통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덜컥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윤 당선인과 가까운 국민의힘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에게 중재안에 대해 상세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 내용이 보도된 후 윤 당선인이 놀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제원 비서실장도 "당선인이 권 원내대표와 특별하게 교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윤 당선인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을 긋는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의 거센 반발을 윤 당선인이 무시할 수 없었다는 해석도 있다. 검찰 출신 국민의힘 의원은 "주말 사이 윤 당선인에게 중재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법조인들이 많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야 합의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과반 이상으로 집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의 싸늘한 기류에 권 원내대표는 25일 스스로 합의를 사실상 뒤집었다. 당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에서 "여야 합의안을 재논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24일까지 "합의안은 지켜져야 한다"던 강경한 입장을 접은 것이다. 그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가 윤 당선인에게 상황 설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 번복으로 국민의힘이 입게 될 내상은 상당하다.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합의를 뒤집는 상황에 이른 책임론이 권 원내대표를 향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정치 세력의 말 뒤집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 당선인의 리더십도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새 정권 핵심부의 '정치력 부재'와 '소통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중재안 합의 번복을 빌미로 강경 대응을 예고했으니 국무위원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새 정부 출범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