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ICBM 발사는 2017년 11월 29일 이후 4년 4개월 만으로 한·미가 설정한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은 행동이다.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온 문 대통령은 물론 군, 외교당국이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을 천명한 배경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이날 저녁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양국 공조 체계가 가동됐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이번 발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를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이어 "정부 교체기에 국가안보에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모든 대응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NSC 회의 이후엔 정부 차원의 규탄 성명도 냈다. 서주석 NSC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은 청와대에서 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굳건한 군사적 대응 능력과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어떠한 위협에도 확고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평소 국방부나 외교부 차원에서 발표하던 정부 성명을 청와대가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의 이번 도발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서 실장에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오늘 상황과 대응계획을 브리핑하고, 향후에도 긴밀히 소통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과 집무실 용산 이전 등을 극한 대립 중이지만, 국가 안보 앞에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긴급한 안보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당선인 측과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군 당국은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군은 이날 북한의 ICBM 도발에 대응해 오후 4시25분부터 동해상에서 현무-II 지대지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등 합동 지해공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언제든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공동 대응에 나섰다. 정의용 장관은 블린컨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의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면서 빈틈 없는 공조를 강화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통화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조치를 포함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북한과의 대화 여지는 남겨놨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비핵화를 달성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