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옛 소련(러시아)에서 개발한 자동소총의 대명사 AK-47은 탄생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베스트셀러 무기입니다. 조작법이 간단하고 저렴한데다 화력까지 뛰어나 현재까지 50여개국에 1억 정 가까이 유통됐습니다. 습기와 모래에도 강해 1960년대 베트남전은 물론 2003년 이라크전이 벌어진 사막에서도 미군의 대표 소총 M16을 상대로 맹활약을 했지요. 9ㆍ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이 2011년 최후의 순간까지 AK-47을 곁에 뒀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유명세를 탔습니다.
초히트 상품을 개발한 건 기계공 출신의 20대 청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독소전쟁에 전차병으로 징집된 그는 독일군의 습격에 스러져간 동료들을 보며 적을 무찌를 총기를 개발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불타는 복수심과 뜨거운 애국심이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간 실패와 도전을 반복한 끝에 현대 무기사에 이름을 아로새길 AK-47을 완성합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 때문이었을까요. 국민적 영웅이 된 칼라시니코프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만들고도 떼돈을 벌진 못했습니다. 국가로부터 노동자 월급의 4~5배 정도의 수입과 월 50달러의 연금, 아파트, 돈 안 되는 훈장을 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소련군 무기 아카데미에 소속돼 개발했기에 특허 등록을 하지 못했고, 냉전시대였기에 옛 소련이 공산권 국가들에 총기 설계도면을 무상으로 나눠준 영향도 컸습니다. 북한 역시 이 도면을 공짜로 넘겨받아 1958년부터 총기를 제작했습니다. 엄격한 기준으로 면허생산을 허가해 총기 1정이 팔릴 때마다 1달러의 로열티를 챙기며 돈 방석에 앉은 미국의 M16 개발자 유진 스토너와 비교되는 대목이지요.
최근 세계 7번째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성공한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진들도 칼라시니코프와 비슷한 처지입니다. 지난달 15일 ADD 안흥시험장 앞바다에서 진행된 시험 발사 당시 잠수함 도산안창호함(3,000톤급)에 탑재된 탄도미사일이 깊이 15~20m 수중에서 발사된 후 목표 지점에 정확히 명중했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문재인 대통령이 “기상 악조건에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춘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밤잠 못 이루며 SLBM 개발에 성공한 연구진들은 성과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들에게 는 별도의 성과 보상이나 격려금은커녕 연 60만 원의 보안 수당이 지급된 돈의 전부였습니다. 관련 성과를 다룬 논문을 일절 쓰지 않고 “내가 SLBM을 개발했다”고 발설하지도 않는 대가로 매달 5만 원만 받고 끝난다는 거지요. 논란이 되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15일 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ADD와 방위사업청, 해군 관계자들에게 표창을 주고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이들에게 왜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무기는 독특한 재화입니다. 대표 공공재인데다, 유일한 소비자가 국가입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하면서 리스크는 크고, 고객은 한정된 무기 개발에 무작정 뛰어들기 힘든 이유입니다.
반대로 방산업체가 국가 통제를 벗어나 전략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도 정부 입장에선 부담입니다. 비싼 값을 부르는 적국에 무기를 판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적국에 대놓고 무기를 팔아먹어 악명이 높았던 영국의 무기중개상, 바실 자하로프같은 인물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정부가 주도해 웬만한 핵심 무기 기술을 개발하고 나머지 기술과 무기 제작 및 생산을 업체에 맡기는 구조가 일반화된 이유입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저작권이 제작비를 투자한 넷플릭스에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무기 저작권도 정부에 있습니다.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 탄생한 기술이니 개발자가 별도로 특허 등록을 하기 어려운 겁니다. 소련군에 소속됐던 칼라시니코프가 특허를 신청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국방부와 방산업체가 한통속으로 움직이는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대표적입니다. 1860년대 남북전쟁을 겪은 미국은 내전을 치르면서 국가 주도로 무기를 생산한다는 개념이 모호해졌다고 합니다. 록히드마틴사와 같은 민간 방산업체가 무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된 겁니다. 방산업체 임원들이 국방부 고위직을 꿰차는 방식으로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마크 에스퍼만 해도 미 5대 방산업체 중 하나인 레이시온 로비스트 출신이었습니다. 정부가 아닌 방산업체 소속이었던 M16의 개발자 스토너가 엄청난 로열티를 챙길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정부 돈으로 개발했다고 해서 연구진에게 마땅한 보상을 하지 않는 건 실정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기관 혹은 기업의 돈과 시설을 활용해서 개발하는 것을 ‘직무개발’이라고 하는데요, 발명진흥법에 따르면 직무개발의 경우도 사용자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하도록 돼 있습니다.
연구진이 인센티브를 받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무기를 수출해서 생기는 수입 중 일부를 로열티로 챙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600여 대 넘게 팔린 명품 자주포 K9의 수출은 완성업체인 한화디펜스가 하지만 핵심 기술의 저작권은 정부(ADD)에 있기에 수출이 성사될 때마다 정부에 기술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LIG 넥스원이 생산하는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현행법을 보면 방산업체는 수출액의 2%를 ADD에 로열티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러면 ADD는 이 가운데 절반(1%)은 연구진 성과급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는 연구개발에 재투자합니다. 최근 K2 전차 핵심 기술을 개발한 ADD 연구진들이 700억 원대 성과급 배분을 놓고 집단소송까지 불사한 것도 해외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 덕분입니다.
그러나 SLBM 개발진들에겐 ‘그림의 떡’같은 이야기입니다. 개발 전 과정을 비밀에 부치는 비닉(祕匿) 사업이라 수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은밀히 이동하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적국에 위협적인 전략무기라 누구에게도 팔 수 없는 겁니다.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ADD를 방문해 “세계 최고 수준의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며 극찬한 괴물 미사일인 현무-4 개발자들도 같은 처지입니다.
남에게 주기 싫을 정도로 치명적인 기술을 개발했는데 성과급은 0원인 모순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보안수당 60만 원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무기를 개발하는 사실 자체가 극도의 보안 사항이다보니 공개 민원을 제기하거나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요. 한 마디로 애국심과 사명감에 기대어 그저 참으라는 얘깁니다.
정부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항변합니다. 형평성 탓에 특정 부처ㆍ기관의 인건비만 대폭 올려줄 수 없다는 겁니다. 무기 생산이 다른 일반 재화와 함께 국가계약법에 한데 묶이면서 별도의 보상을 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고요.
무엇보다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서욱 장관도 21일 국회 국방위 종합감사에서 ‘연구진들을 박하게 대우하면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의원들의 질타에 “무기체계 개발이 탄력 받을 수 있도록 보상 근거를 만들겠다”면서도 “재정당국과 협의가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고 말을 흐렸습니다. 일각에선 승진, 인사 등의 비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하지만 개발 자체에 몰두하는 연구원들은 피라미드식 서열이 아니라 승진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군 당국이 그 동안 음지에서 묵묵하게 개발에 매진한 이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도 자문해 봐야 합니다. 보상 근거가 없다는 게 군 당국의 해명인데, 왜 그간 규정을 마련할 생각을 못했느냐는 겁니다. 김병기 의원실 관계자는 “비닉무기 수출을 못하면 무기 생산 금액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등 별도 규정을 만들 수 있다”며 “대안을 마련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아무 관심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과거 연구진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국가들마저도 요즘엔 파격 대우를 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3년 은하 과학자거리, 이듬해엔 위성과학자 주택지구를 건설하며 과학자들에게 42인치 LED TV를 선물한 건 너무 유명한 일화고요. 지난 11일 열린 무기 전시회(국방 발전전람회)에선 장창하 국방과학원장,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 등 무기 개발 주역들과 맞담배를 피우기까지 했습니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 당시 전일호 중장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화제가 됐습니다. 최고 존엄과 마주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영광을 무기 개발자들에게 준 겁니다.
중국이 극초음속비행체 등 신무기 개발을 위해 미국에서 활약하던 중국계 과학자들에게 파격 조건을 제공하며 스카우트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요. 물론 여론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사회주의 체제 특성이 반영됐겠지만 그만큼 인재 가치를 중시한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애국심과 희생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주국방을 강조한다면 그에 걸맞게 연구진부터 대우해야겠지요. 쥐꼬리만한 병사 월급을 뜻하는 ‘애국페이’처럼 연구진를 계속 푸대접하면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누구보다 조국과 사회주의를 사랑했던 칼라시니코프조차 냉전 이후인 1990년, 스미소니언 협회 초청으로 미국에서 스토너를 만나 AK-47보다 못한 M16을 만든 그가 돈 방석에 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눈치 챈 러시아 정부는 그의 연금을 100달러로 올려주고 운전기사까지 제공했고요. 그간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그는 자신의 이름을 보드카 회사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뒤늦게 돈벌이에 나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