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깐부인가, 아닌가'...국민의힘 '깐부 작전'의 결말은

입력
2021.10.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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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레이스에 등장한 '깐부' 합종연횡
먼저 깐부 외쳤지만, 모두를 적으로 돌린 윤석열
'타도 윤석열'... 한시적 동맹 맺은 홍준표-유승민
"죽었다 살아난" 원희룡 "깐부 없이 1등" 완주의지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대목이죠. 치매에 걸린 노인으로 등장하는 참가자 1번 오일남(오영수 분)은 성기훈(이정재 분)과 구슬치기를 하다 마지막 남은 자신의 구슬을 양보하며 게임에서 탈락하게 되는데요. 기훈이 자신을 속인 걸 알고도 넘어가 줬죠. 승리한 기훈이 퇴장할 때 비로소 "내 이름은 일남이야. 오일남"이란 통성명에 이어 마지막 반전의 재회까지. 깐부로 맺어진 두 사람의 지독한 인연은 이어집니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면서 같은 편을 이뤘던 친구들끼리 썼던 은어 '깐부'. 짝꿍, 파트너 의미로 쓰이는 깐부가 정치권을 강타했습니다. 대선 경선 레이스가 한창인 국민의힘 예비후보 4명의 이야기인데요.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대선주자들은 서로 깐부를 외치며 원팀을 위한 페어플레이를 다짐하고 있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일 뿐. 깐부 구애 작전 뒤엔 복잡한 합종연횡 전술이 깔려 있습니다. 덥석 손을 내미는 이유도, 잡은 손을 돌연 뿌리치는 이유도 '일단 나부터' 1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죠.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대선 게임에서 진정한 깐부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깐부 외쳤지만, 모두를 적으로 돌린 윤석열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

국민의힘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처음 깐부를 외친 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입니다.

홍준표 의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대장동 의혹과 함께 윤 전 총장 본인을 비롯한 부인, 장모 등 가족 비리를 싸잡아 겨냥하며 "범죄공동체", "범죄 대선"이라고 직격탄을 날리자, 검찰 선후배 인연을 부각시키며 홍 의원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데요.

깐부를 꺼내든 속내는 뒤에 나옵니다. "우리에겐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 않느냐.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하는 동지들 아니겠느냐."

겉으로는 화해의 제스처였지만, 본인을 향한 '공격 좀 적당히 하라'는 압박 메시지가 담겨 있었죠.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싸우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 같은 편끼리 싸우느냐, 왜 1등 후보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원망이 짙게 배어 있었죠.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윤 전 총장의 구애에 홍 의원은 "깐부는 동지를 음해하지 않는다. 캠프의 문제 인사들부터 단속하라"는 말로 응수합니다. 윤 전 총장 캠프 인사들이 홍 의원을 향해 근거 없는 비난에 나선 것부터 바로잡으라는 건데요. 이로써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의 깐부 맺기는 싱겁게 끝이 나버리고 말죠.

'홍 선배님'과 진짜 깐부가 되고 싶었다면 한 번 더 손을 내밀 법도 하지만, 거절의 상처는 컸던 모양입니다. 윤 전 총장은 이후 갑자기 빠르게 공격 태세로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맞다", "선거 4연패(連敗) 주역들이 당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기보다 새로운 피인 제가 당을 바꿀 것" 등 나머지 주자들을 저격하며 모두 적으로 돌리고 말았죠.

입당한 지 석 달 된 신입 당원의 '호통'에 선배들의 반응은 싸늘할 수밖에 없겠죠. 여기에 더해 윤 전 총장은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또 한번 당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거센 협공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제일 먼저 깐부를 외쳤지만, 모두를 적으로 돌린 윤석열 전 총장. 선두권 주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볼 수도 있고,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 차별화를 위해 본인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쏟아지는 깐부 러브콜에, '내 갈 길 가겠다' 선포한 원희룡

윤 전 총장이 홍 의원보다 깐부 맺기에 공을 들인 건 원희룡 전 제주지사였습니다. 국민의힘 2차 경선 컷오프에서 막차를 탄 원 전 지사. 지지율 경쟁에서 비껴가 있다고 본 걸까요. 윤 전 총장은 원 전 지사에 대해 "토론을 참 잘한다"고 치켜세우며 '원희룡 띄우기'에 열을 올렸는데요.

원 전 지사도 토론회에서 윤 전 총장을 공격하는 걸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윤 전 총장이 없는 자리에서도 의리(?)를 지키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죠. 유승민 전 의원과의 맞수토론에서 유 전 의원이 윤 전 총장의 검찰총장 당시 징계에 대한 법원 판결 등에 대해 원 전 지사의 입장을 캐물었지만, 원 전 지사는 "특별한 견해를 표명하고 싶지 않다"고 딱 선을 그었죠. 유 전 의원은 거듭 윤 전 총장의 후보 자격을 문제 삼았지만, 원 전 지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한때 '윤석열-원희룡 동맹'이 맺어지는 것 아니냐,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왔죠.



하지만 원 전 지사는 "택도 없는 얘기", “(단일화를 요구하거나 받는) 사람들도 우습고, 전체 경선이 우습게 된다"고 일축했죠. "등 뒤에 묘한 시선이 꽂히는 거 같은데, 세 번이면 스토커에 해당하는 거죠? 신고하려 한다"는 농담으로 윤 전 총장의 일방적 러브콜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럼 왜 유독 윤 전 총장에 대한 도덕성 공세엔 거리를 두려는 걸까요. "당내(경쟁)에서 네거티브는 도움이 안 된다",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데는 전략적 선택, 지도자로서의 매력 두 가지를 공략해야 된다"는 판단 때문이란 건데요. 그러면서도 홍준표 의원 때리기에는 적극적이었죠. 아무래도 원 전 지사 나름의 단계를 정해놓고 차례차례 격파에 나서려는 전략으로 보이죠.

윤 전 총장을 향한 전략적 회피로 썸을 타던 원 전 지사는 최근 들어 '후보교체론'의 군불을 떼며 윤 전 총장 저격으로 타깃을 옮기는 모양새입니다. 잇따르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윤석열 대세론'에 균열이 일자, 그 틈을 파고들고 나선 거죠.



"11월 5일(국민의힘 대선후보 확정일)에 너무 목맬 필요가 없다", "이번 경선은 끝나도 끝나는 게 아닌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등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도덕성 문제로 낙마할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을 싣는 데 총대를 메기 시작한 거죠. 윤 전 총장의 전두환 옹호 발언이 알려지자 원 전 지사가 단순 사과를 촉구하는 걸 넘어 "후보 사퇴까지 갈 무게감 있는 발언"이라고 비판한 것 역시 이런 맥락입니다.

원 전 지사의 '마이웨이'에는 대장동 1타 강사로 주목받는 최근의 상승세도 영향을 끼친 것 같죠.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에 이어 원 전 지사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는 여론조사도 처음 나왔거든요. "찬바람과 함께 원희룡의 시간이 왔다"고 의미를 부여한 원 전 지사. 4강 컷오프에 오를 때만 해도 "죽다가 살아났다"고 했지만 이제 "양보할 수 없다. 1등으로 올라서겠다"고 포부를 밝힌 만큼, 누구와 깐부 맺을 시간도,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타도 윤석열'... 대선 재수생 유승민, 홍준표의 한시적 동맹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적 제휴'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의 깐부 관계는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의 1차 목표는 일단 윤석열 대세론 흔들기. 이를 위해 두 사람은 협공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윤 전 총장이 '선생님'으로 부르며 오랜 기간 만났다는 천공스승으로 촉발된 주술 논란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토론회 초반 이 문제를 처음 걸고 넘어지며 화력을 쏟아 부었는데요. 윤 전 총장 측에서 '내부총질'이라고 반발하자, 홍준표 의원이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데 무슨 가이드라인이 있느냐"고 면박을 주며 유 전 의원 지원 사격에 나섰죠.

이후에도 두 사람은 윤 전 총장의 '당 해체', '4연패 주역',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서도 "눈에 뵈는 게 없냐"(유승민) "버르장머리 고쳐야 한다"(홍준표) 등 맹공을 퍼부으며 연합 전선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끝까지 깐부로 남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죠.

당장 윤 전 총장을 끌어내리는 순간, 그때부터 두 사람이 무너뜨려야 할 상대는 서로가 될 테니까요. 더욱이 지난 대선에서도 맞붙었던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속속 파악하고 있을 테니 더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겠죠. 지금의 4강 구도가 짜이기 전엔, 두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언성을 높이며 충돌하기도 했었고요.

서로의 발톱을 숨긴 전략적 동맹. 꽉 잡았던 두 사람의 손이 느슨해질 조짐이 보이는데요. 최근 홍 의원이 윤 전 총장과의 맞수토론에서 생각보다 무딘 공격을 선보여, 의외라는 평가가 많이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정치9단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홍 의원이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꽤 따라 잡았구나. 몸조심하는 태도로 가는 것 아닌가 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죠.

유 전 의원도 홍 의원에 대한 견제구를 슬슬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재미있는 분이지만 말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지난 대선에서 말한 것 중에 나중에 팩트가 아닌 거짓으로 드러난 게 1등이 홍준표 후보여서 홍 후보와 1대 1 토론할 때 검증해 볼 생각"이라고 벼르고 있죠.

그러면서 "자꾸 무슨 윤-원 깐부, 홍-유 깐부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저는 전혀 아니다. 끝까지 치열하게 공정하게 경쟁해서 1명을 뽑아야지 중간에 무슨 단일화를 한다, 편을 한다 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완주 의지도 다졌죠.

서로 물고 물리며 펼치는 깐부 작전. 아무래도 대선 게임에서 진짜 깐부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죠? 깐부 아닌 깐부, 밀당의 승자는 11월 5일 판가름 나지 않을까 싶네요.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