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항만 물류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 등 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거쳐 들어오는 물동량을 소화하는 미국 서안 항구들입니다.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전체 컨테이너의 40%를 소화하고 있는 곳입니다.
20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페드로만에 위치한 롱비치항 앞바다에는 100척가량의 컨테이너선들이 접안을 하지 못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실정입니다. 한 척당 대략 1만TEU(20피트 길이의 표준 컨테이너 1개를 나타내는 단위)를 싣고 있다고 가정하면 컨테이너박스 100만 개가 밀려 있는 셈입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롱비치항의 월평균 수입 컨테이너 물동량이 약 33만3,000TEU가량이니, 평시대로 항만이 운영된다면 지금 바다 위에 떠 있는 화물을 처리하는 데만 약 3개월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지난 1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물류 대란 해소를 위해 두 항구를 앞으로 90일 동안 쉬지 않고 24시간 가동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입니다.
물류대란이 빚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행·레저 등으로 분산됐던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이 온라인 쇼핑으로 집중되면서, 지난해 2분기부터 물류 시스템은 소비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다음 달 26일인 블랙프라이데이와 성탄절, 연말 시즌 등 소비가 폭증하는 3분기는 전통적인 물류 성수기로 꼽힙니다. 이미 지난달부터 롱비치항 앞바다에 40여 척의 컨테이너선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달 들어 적체가 가중된 것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물동량은 얼마나 늘었을까요? 미국 태평양상선협회(PMSA)에 따르면 올해 1~7월 LA항과 롱비치항을 통해 수입된 컨테이너 물량은 600만1,684TEU입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대비 23.4%, 지난해보다는 35.1% 증가한 수치입니다.
증가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나요? 국내 배달 주문량은 연간 증가율이 100%를 웃도는 상황이지만 모두 소화할 수 있는데, 겨우 30% 내외 증가했다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이해가 안 되시나요?
문제는 글로벌 선복량과 항만의 화물 처리 능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배달 업체의 경우는 긱 노동자(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은 노동자)를 이용하고,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으로 배달 수단을 쉽게 확장할 수 있었지만, 컨테이너선 1대를 건조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과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해운업계는 폐선율을 줄이고 유휴 선박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용선율도 사실상 100%로 풀가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구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에 계속 배가 모자란 것이지요. 게다가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되면 배가 남아돌 수도 있어, 새로 배를 짓는 결정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미국 항만의 화물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업계에선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당시 이탈한 노동자들이 복귀하지 않은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항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셧다운되는 사태도 영향을 끼칩니다. 실제로 세계 최대 물동량을 소화하는 중국 닝보항은 지난 8월 확진자 발생으로 일부 터미널이 폐쇄됐었죠.
일각에선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 화물 트럭을 운전하는 한국인 유튜버는 "최악의 물류 대란 속에서도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연속 일이 없어 쉬었다"며 "문제는 항만에서 제대로 하역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물류대란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입니다.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장관 역시 내년에도 물류 대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 소비 패턴이 예전처럼 분산되거나, LA·롱비치항을 확장하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현상은 계속될 듯합니다. 2019년 LA·롱비치항을 합친 물동량은 1,697만TEU로 부산항(2,199만TEU)보다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