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애닝(1799~1847)은 ‘고고학의 어머니’로 불린다. 발굴 실적을 보면 응당한 수식이다. 12세 때 이크티오사우르스 발굴을 시작으로 플레시오사우르스, 디모르포돈 등 쥐라기 시대 공룡 화석을 최초로 찾아냈다. 생계를 위해 바닷가에 나가 조개화석을 주워 팔다가 화석 전문가가 됐다. 당대 고생물학계를 뒤집어놓는 발굴을 여러 차례 했으나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의 발굴물은 영국박물관에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전시됐다. 런던지질학회에 가입할 수도 없었다.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하층민인데다 무엇보다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초야에서 외롭게 자기 일을 하며 살다 생을 마감해야 했던 매리 애닝은 가부장제 계급사회에서 어떤 사랑을 했을까. 영화 ‘암모나이트’는 매리 애닝의 불우했던 삶을 상상을 붓 삼아 화면에 그려낸다.
1840년대 매리(케이트 윈슬릿)는 영국 남서부 해안지역 라임 레지스에 살고 있다. 그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일찍 썰물일 때 바닷가를 찾아 화석을 채취한다. 집에 돌아와 화석을 씻고 이를 가게 진열장에 놓는다. 가게에 손님이 붐비진 않지만 희귀 화석을 갖추면서 고고학자와 지리학자들이 종종 찾는 명소가 됐다. 매리는 학계에 이름을 알렸으나 이전과 달라진 건 없다. 학자로 대접 받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에 쪼들린다. 삶은 힘겨운데, 어머니의 병은 깊어만 간다.
어느 날 상류층 지질학자 로더릭(제임스 맥아들)이 아내 샬롯(시얼샤 로넌)과 함께 매리의 가계를 찾는다. 로더릭은 화석 발굴 장소를 안내해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는 학술적 관심사 외에도 다른 목적으로 라임 레지스를 찾는다. 병치레로 유산을 거듭하는 아내를 요양시키고 싶어한다. 로더릭은 유럽으로 학술 여행을 떠나며 샬롯을 매리에게 맡긴다.
매리는 샬롯이 못마땅하다. 나고 자란 배경이 다른데다 억지로 떠맡게 된 사람이라 부담스럽다. 샬롯이 기괴한 치료법으로 심한 몸살감기에 걸리고 매리가 샬롯을 간호하면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화석 발굴 장소를 함께 다니면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샬롯은 매리의 발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고, 매리에게 이를 강조해 말하기도 한다.
매리는 군내 나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고, 샬롯은 억압적인 가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쌓아간다. 샬롯이 런던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마침내 찾아오고, 두 사람은 서로의 농밀한 마음을 확인한다.
샬롯이 떠난 후 매리의 마음에 찬 파도만 일렁인다. 일상에도 변화가 없다. 화석을 채취해 내다팔고, 화석들의 특이함을 기록한다. 샬롯에게서 오는 편지가 그나마 위안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마음속 빈자리는 더 커진다.
샬롯은 매리를 런던으로 초대한다. 매리의 옛 연인은 매리에게 다시는 사랑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매리는 런던으로 향한다. 샬롯과 뜨겁게 재회한다. 기쁨은 잠시. 샬롯은 런던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사랑하는 이와 안락한 삶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과연 자신의 인생일까. 매리는 고민한다. 런던에선 화석 발굴을 할 수 없고, 나름의 연구를 이어갈 수 없다. 학계로부터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적이지만 포기는 쉽지 않다. 바로 나 자신이냐, 사랑이냐는 선택 앞에서 매리는 고뇌하다 결단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