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인형 부여잡은 아이들… 아프간 협력자들 한국땅 밟았다

입력
2021.08.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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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공로자' 391명 중 378명 인천공항 입국
대부분 어린 자녀 둔 가족… 피곤한 기색 역력 
코로나19 검사 받고 하루 묵을 김포 호텔로

"기분 너무 좋아요!(I feel very well)"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들이 26일 '미라클'처럼 한국에 도착했다. 긴 비행시간 탓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안전지대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이 표정에 어렸다. 어린 아이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듯 부모 옆에서 연신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아프간에서 한국을 도왔던 현지인 협력자와 그 가족 378명(73가구)은 이날 오후 4시 28분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4시 53분(한국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공중급유 수송기 KC-330를 타고 출발한지 11시간여 만이다. 국내 이송 대상 391명 가운데 남은 13명(3가구)은 다른 수송기를 타고 입국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앞장선 입국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이는 아이들이었다. 오후 6시 5분 방역복을 입은 보안요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입국장에 들어선 이들은 다들 인형을 하나씩 꼭 껴안고 있었다. 한국 작가가 만든 캐릭터 '몰랑이' 인형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플래시 세례에 놀란 듯 뒤편에 있는 부모를 돌아보기도 했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아이, 품에 안긴 아이도 있었다. 한 꼬마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씩씩하게 카트를 밀면서 부모를 거들었다.

어른들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국에서 가까스로 챙겨온 짐들을 운반했다. 일부는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입국자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었다. 정부는 영유아가 100여 명, 6~10세가 80여 명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들은 착륙 직후 공항 보안구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체온 측정, 문진표 작성, 유전자증폭(PCR) 검사 순으로 진행됐다.

입국장을 나온 아프간인들은 국방부와 법무부에서 마련한 버스 13대에 나눠타고 경찰 순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경기 김포시 호텔로 이동했다. 해당 호텔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시설로 쓰이고 있다. 버스가 도착한 순서대로 한 대씩 하차가 이뤄졌고, 탑승객들은 방역복을 입은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서 짐을 꺼내 객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호텔에서 하루 머물면서 PCR 검사를 기다리게 된다. 음성이 나오면 내일 오전 임시 주거지인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해 14일간 격리 생활을 한다. 양성 판정을 받을 경우엔 해외 입국 확진자 대응 지침에 따라 △무증상·경증은 생활치료센터 △중증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게 된다. 정부는 이들이 인재개발원에 머무는 6~8주간 정착에 필요한 사항을 교육할 예정이다.


전례 없는 대규모 피란에 공항은 들썩

당초 아프간인들은 이날 오전 5시 50분쯤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파키스탄에서 이륙 전 일정이 늦어지면서 오후에 도착했다.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은 이날 취재진에 '보안 점검' 때문에 도착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서 보안 문제에 신경을 쓰고 우려를 갖고 계신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점검을 하다 보니 예정 시간보다 (입국이)늦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분쟁국 피란민의 대규모 입국은 처음이라 이날 인천공항은 일찍부터 취재진으로 붐볐다. 공항 측은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아프간인과 취재진의 직접 접촉을 막았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개 중대를 공항에 배치했다.

입국장에 들어선 아프간인들의 모습은 공항 이용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김명자(55)씨는 "뉴스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면서 "힘들 때 우리를 도와줬으니 당연히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활빈단의 홍정식 대표는 입국장에서 '한국 도왔던 아프간 난민 따뜻하게 보호 지원하자!'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이들의 입국을 환영했다.


영종도= 오지혜 기자
윤한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