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의 납품 등록ㆍ인증 위탁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조달마스협회(마스협회)와 정부조달우수제품협회(우수협회) 핵심 보직을 조달청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최근 10년 동안 두 협회에 재취업한 전직 조달청 직원이 43명에 이르고, 우수협회 경우 공공기관 조달을 따낸 규모(2000~2019)가 30배 이상 폭증했다. 공공 조달시장 절대 권력인 조달청이 앞장서 ‘공정’의 가치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이른바 ‘조달청 마피아(조피아)’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두 협회는 공공기관이 조달청을 통해 물품ㆍ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등록 인증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마스협회 경영ㆍ운영을 좌우하는 상근부회장, 관리이사, 사업이사를 모두 지방조달청장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조달 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본부장 2명도 모두 조달청 출신이다. 2010년부터 이달 18일까지 마스협회에 재취업한 조달청 공무원은 17명으로 대부분 핵심 요직을 거치거나 현직에 있다. 우수협회도 주요 보직을 모두 조달청 고위공무원들이 맡고 있다. 2010년 이후 조달청에서 우수협회 핵심 보직으로 자리를 옮긴 직원은 26명에 달했다. 김 의원은 “그야말로 대를 이어 요직을 장악한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두 협회가 조달청의 단순 유관기관이 아니라 사업자의 공공 조달시장 진입 여부를 사실상 좌우하는 권력기관이라는 점이다. 공공기관은 비리 위험을 이유로 조달청이 인증한 사업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때 사업자가 조달청 정부 조달 리스트에 포함되려면 적격성 평가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지원하는 곳이 마스협회다. 우수협회도 우수제품 선정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담당한다. 결과적으로 영세 사업자가 공공 조달시장에 진입하려면 두 협회의 문턱을 넘지 않고는 쉽지 않다. 마스ㆍ우수협회가 공공조달 업무를 독식하는 만큼 공정성을 믿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까닭이다.
두 기관의 영향력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우수협회 회원사가 공공기관에 물품ㆍ용역을 공급한 규모는 2000년도 1,040억 원에서 2019년 3조2,700억 원으로 3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같은 기간 회원사가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승폭이 가파르다.
더 큰 우려는 우수업체로 등록되기만 해도 품목 수량과 금액에 제한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쟁 없는 납품은 공급자의 ‘가격 부풀리기’에 따른 탈세 등 부작용 소지가 적지 않다. 마스업체에 등록된 업체는 최대 1억 원까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 조달청 사업 규모는 74조 원이다. 그러나 청탁 등 불공정한 행위가 빈발하는 구조인 점을 고려하면 예산 낭비 가능성도 비례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올 초 “165만~200만 원 하던 제품이 조달청을 거치면서 550만 원으로 가격이 부풀려져 전국 소방관서에 납품됐다”며 원인을 조달청의 공공 조달시장 독점으로 지목한 이유기도 하다. 김 의원은 “시장 독점이 높은 가격, 입찰 담합 의혹 등의 폐단을 초래한 만큼 지방조달시장의 경쟁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