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첫 날,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낸 추모 논평의 제목이다. 논평은 "최근 두 달간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여성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실이다. 바로 지난달만 하더라도 세상에 알려진 죽음만 넷에 달한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더 많을 것이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없이 반복되어 온 비극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이어진 여성들의 죽음은, 정말 '스스로의 선택'일까.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로 이후 여성학을 연구하다가 현실 정치에 뛰어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중사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을 만난 이후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가 겪은 2차 피해가 너무나도 극심해 모든 과정이 마음으로 이해됐다"라는 것. 가해자는 피해자인 C중사에게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고, 가해자의 가족들과 부대 상관들도 "명예로운 전역을 하게 해달라"고 조직적으로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C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을 자신의 휴대폰에 담은 이유는 처절한 고발이다. 실제로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야 사회는 겨우 움직였다.
C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모 중사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지 석 달 만인 2일 밤 구속됐다. C중사의 부모가 올린 '사랑하는 제 딸 공군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은 게시 하루만에 31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서욱 국방부 장관도 고인을 찾았다. 장례까지 미룬 채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고인의 부친은 "억울하다고 청원해야만 장관님이 오실 수 있는 상황이 유감스럽다"고 통탄했다.
마찬가지로 청주에서 두 학생이 숨진 후인 지난달 25일에야 구속된 의붓아버지도 장모 중사와 같은날 검찰에 넘겨졌다. '두 명의 중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 계부를 엄중 수사하여 처벌해주세요'라는 관련 청원은 12만 명 이상이 뜻을 모았다.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는 고통 자체도 상처지만, 때로는 이를 말하는 일이 그보다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피해 여성, 특히 침묵하는 피해 여성이야말로 가부장제가 가장 원하는 여성상이라고 말한다. "여성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있어야만 피해가 인정되고, 피해자로서 '권력'을 부여 받게 된다"는 것. 이런 이유로 "긴 시간 성폭행이라는 범죄는 우리의 침묵에 의지했다. 우리가 발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데서 오는 두려움."(디어 마이 네임·샤넬 밀러)
그러나 침묵하지 않아 미국은 물론 세계를 뒤흔든 미투 운동을 확산 시킨 샤넬 밀러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에게 세간의 구미에 맞는 '적절한' 피해자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했다 "이번 생에서 당신이 안전을, 즐거움을,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알기에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밀러는 201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집 근처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갔다가 술에 취해 성폭행을 당했으나, 판사는 "징역형이 가해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상황은 그가 법정에서 낭독한 '피해자 의견 진술서' 전문이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게재, 1,800만명에게 읽히면서 바뀌었다. 결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정했고, 판사는 2018년 주민소환 투표로 해임됐다.
그러나 밀러는 이를 그의 이야기의 '결말'이라 보지 않았다. 그의 성범죄 피해 생존기를 담은 책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에는 행복한 결말이 없다. 행복한 부분은, 결말 같은 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나 삶을 이어갈 방법을 찾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