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중국 방해로 화이자 백신 못 샀다”

입력
2021.05.27 00:57
차이잉원 총통 "중국 방해로 계약 불발"
중국 정부 "백신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중국 · 대만 간 백신 갈등 심화하는 모양새

대만이 중국의 방해로 화이자 · 바이오엔테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지 못했다며 공개적인 비판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대만의 주장을 부인하며 "백신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2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집권 민진당 회의에서 "독일 바이오엔테크와의 백신 계약은 중국의 개입으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한 독일 제약사다. 대만은 지난 2월 바이오엔테크와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지만, 바이오엔테크 측이 돌연 입장을 바꿔 무산됐다.

당시 대만 정부가 중국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시사하긴 했지만, 공개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만은 중국 제약사 푸싱의약그룹이 따낸 백신 유통권이 계약 실패에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의심한다. 푸싱의약그룹이 3월 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공급권을 확보했는데,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는 물론 대만까지 공급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2월 백신 구매 계약을 눈앞에 뒀던 대만은 중국의 압박이 작용해 바이오엔테크가 입장을 바꿨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의 주장을 부인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만이 중국에서 백신을 확보할 채널에는 막힘이 없다"며 "대만이 백신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막다른 길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오엔테크는 차이 총통의 발언에 대해 "우리는 글로벌 백신 공급을 지지한다"고만 밝혔다.

세계적 방역 모범국이었던 대만에선 5월 들어 지역사회 감염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한자리 수였던 일일 확진자는 25일 기준 539명으로 치솟았다. 대유행이 시작되자 차이 총통의 지지도도 급락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6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45.7%라고 전했는데, 총통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건 17개월만에 처음이다.

대만 정부로선 2월의 계약 불발이 아쉬운 상황이 됐다. 인구는 2,300만명이 넘는데, 지금까지 대만에 들어온 백신은 70만회분 남짓이다. 백신 1차 접종률도 1.36%에 불과하다. 백신 부족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확산되자 차이 총통은 26일 "아스트라제네카와 모더나 백신 구매에 성공했다"면서 "대만이 확보한 백신은 3,000만회분 가량"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당장 접종할 백신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차이 총통 역시 추가 구매한 백신이 도착하는데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백신 제공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차이 총통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대만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륙위원회는 24일 성명을 내고 "대만이 백신을 얻는 데 진짜 장애물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