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의 포성이 어렵사리 멈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공방이 중단되자마자 미국 등 국제사회는 휴전을 확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11일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진 폭격이 가자지구에 남긴 상처는 참혹 그 자체다. 일상 복귀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도움의 손길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깃들기까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21일(현지시간) 새벽 양측이 교전 중단에 동의하자 이집트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휴전 상태를 감독하고 남은 불안 요소를 제거하려 이튿날 이ㆍ팔에 사절단을 급파한 것이다. 줄곧 이ㆍ팔 갈등의 중재자를 자임한 이집트는 피해 현황 파악과 가자지구 재건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가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6, 27일 이ㆍ팔의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찾아 협상을 독려할 예정이다.
미국의 반대로 공동성명이 4차례나 무산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도 이날 기어이 첫 성명을 내고 양측의 지속적인 화해를 촉구했다. 안보리는 성명에서 휴전 협상을 중재한 이집트 및 ‘중동 콰르텟(Quartetㆍ유엔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로 구성된 중동평화 중재 4자 협의체)’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항구적 평화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 영역에서 갈등과 충돌은 이처럼 진정세가 확연하다. 문제는 잿더미로 변해버린 가자지구 주민의 삶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구촌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며 역대 최악의 피해를 본 가자지구 현실을 비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지금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스라엘 측 장기 공습으로 248명이 숨지고 1,900명 넘게 다친 인명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다. 벌써 이재민만 7만7,000명이 나왔다. 건물도 1만7,000여 채가 파괴됐고, 그중 769채는 완전히 붕괴됐다. 도로와 수도, 전력 등 기반시설(인프라) 손상 역시 심각하다. 특히 해수담수화 시설 기능이 마비돼 가자 주민(200만 명) 절반 이상이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제대로 된 방역이 힘든 점을 감안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격히 확산할 우려도 있다. 외신은 11일간 발생한 금전적 피해가 수조 원에 달해 재건에 족히 수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세계 각국이 약속한 복구 지원이 실제 이행될지도 미지수다. 가자지구 지배세력이 하마스인 탓이다. 재건사업을 하마스를 배제한 채 진행하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테러 단체’로 지정된 이 조직과 손을 잡자니 꺼림칙하다. 눈을 부릅뜬 이스라엘도 걸림돌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건설 원조물자를 군사목적으로 전용할까 봐 가자지구 유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어, 별도 합의가 없으면 인프라 복구가 사실상 불가하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014년 ‘50일 전쟁’ 당시에도 국제사회가 54억 달러(약 6조 원) 원조를 공언했지만, 절반만 실현됐다”면서 “다수 아랍국가들이 이란과 연계된 하마스에 대한 지원을 꺼렸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하마스가 테러 단체란 점을 재확인하고,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대화ㆍ협력 상대로 지목했다. 그러나 WP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가자지구를 관리하지 않아 재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이집트가 5억 달러 원조를 약속했고, 유엔도 비상대응기금에서 2,250만 달러를 풀었다. 노르웨이 영국 미국 등도 가자 복구를 돕겠다고 공식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