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음주 문화는 달라도, '취중진담'은 공통이라고?

입력
2021.05.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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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한일 음주 문화의 비교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일 음주 문화는 제법 다르다

애주가로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여러 술자리에 끼어 보았다. 한일 음주 문화는 제법 다르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따라주는 술을 받기 위해 자기의 술잔을 먼저 비우는 것이 주도(酒道)다. 특히 어르신이 손아랫사람에게 술을 따르려는 시늉을 하면, 냉큼 술잔을 비우고 새 잔으로 술을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술을 따라주면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한국의 음주 문화의 관행이다. 상대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밀당’이 술자리의 묘미라면 묘미지만,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음주를 강요당하는 난처한 상황도 곧잘 생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드러내 놓고 술을 권하지는 않지만, 상대의 술잔이 늘 찰랑찰랑 채워져 있도록 배려하는 은근한 권주(勸酒)의 관행이 있다. 술친구의 술잔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점잖게 술을 부어 잔을 채워 놓는 것이야말로 주당의 예의범절, 거꾸로 빈 술잔을 방치하는 것은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음주 문화가 다르다 보니, 술이 들어있는 잔에 술을 더하는 ‘첨잔’에 대한 해석이 정반대다. 한국의 음주 문화에서 첨잔은 제사상에서나 허용되는 비일상적 예법으로, 술자리에서 상대의 술잔에 첨잔하는 것은 큰 결례다. 반면, 일본의 음주 문화에서 첨잔은 술친구에게 배려를 베푸는 행동이다. 적절히 첨잔을 실천하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함을 산다. 이 차이를 잘 모르면 필자처럼 술자리에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본인 친구 부부의 초대로 가족들과의 조촐한 술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다. 아담한 마당에서 숯불을 피우고 해산물과 주먹밥을 구워 먹는 야외 모임이었다. 낯선 외국인의 술자리 참전에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던 분위기도,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면서 제법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었다. 문제는 위에서 예로 든 ‘첨잔’이었다. 이쪽에서 술잔을 미처 비우기도 전에 어르신이 술병을 들어 올려 따르려 하시니 결례가 될까 싶어 황급히 잔을 비웠다. 그런데 새로 받은 술이 한참 남아 있는데 또다시 술을 따르려 하신다. 또 서둘러 잔을 비우고 술을 받고…, 이런 식으로 몇 순배 돌다 보니 주량이 훌쩍 넘게 술이 들어가고 말았다. 나중에야 ‘첨잔’의 관행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부모님은 손님의 술잔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미리미리 채워 놓으려 했던 것인데, 나는 번번이 술을 권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이쪽도 뜻하지 않은 과음으로 생고생을 했지만, 저쪽도 준비했던 술이 일찌감치 동이 나서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요즘에는 술을 병째 시켜서 나누어 마시는 일이 많지 않은 만큼, 예전의 필자처럼 첨잔 때문에 한일 간 음주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못 들었다. 그 대신 ‘개인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일본의 음주 문화는 종종 화제가 된다. 일본에서는 여럿이 모인 술자리라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술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대중적인 선술집 이자카야 (居酒屋)에는 맥주는 물론이요, 다양한 일본술, 증류주를 섞어 만든 각양각색의 칵테일, 와인, 무알코올 음료까지 구비되어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하나씩 고르다 보면, 먹을거리보다 마실거리를 주문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린다. 가벼운 건배로 첫 잔을 시작하는 것은 비슷한데, ‘원샷’을 외치며 모두 함께 기세를 올려가는 한국의 음주 문화와는 달리, 각자 자기의 페이스에 맞춰 술잔을 홀짝거리는 분위기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한국처럼 흥겹지는 않지만 폭음, 폭주할 일이 드물어 일장일단이 있다. 이런 일본의 음주 문화가 한국의 술꾼들에게는 너무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만, 일본인에게도 적극적으로 술을 권하고 술잔을 돌리는 한국의 걸쭉한 음주 문화는 적잖게 이색적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일본에서는 원격 회의 시스템 등을 활용한 비대면 술자리가 꽤 인기다. 실제로 일본인 동료들과 ‘줌 회식’을 종종 즐긴다. 각자 좋아하는 술잔을 기울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푸는 개인주의적인 음주 문화가 비대면 술자리와 은근히 궁합이 맞는다고 느낀다. 반면, 함께 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주당들은 ‘랜선 술자리’에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을 듯하다. 한국에는 술잔을 쨍 부딪히고 서로 부대끼는 ‘찐한’ 술자리를 못 가질 바에는 차라리 ‘혼술’을 택하겠다는 술꾼도 많지 않을까.

◇‘노뮤니케이션’과 ‘취중진담’, 한국이나 일본이나 술은 사회생활의 축

늦깎이로 배웠는데도 제법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덕분에 “빨리 일본어에 숙달한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노뮤니케이션 덕분”이라고 대답한다. ‘노뮤니케이션’이란 일본어로 ‘마시다’라는 뜻의 동사, ‘노무(飲む)’와 ‘커뮤니케이션’을 합성한 말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술자리 토크’인데, 일본에서도 술자리에서는 비교적 활발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다 보니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노뮤니케이션을 실천하다 보면 ‘일본 사람들은 자기 표현에 소극적이다, 내향적이다’는 일반론에 좀처럼 동의할 수가 없다. 맛있는 술 한 잔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누구와도 마음의 벽이 쉽게 허물어지고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 친구들과 술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필자가 노뮤니케이션으로 일본어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농담은 아닌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 가시화되면서 세 번째로 ‘긴급 사태’가 선언되었다. 관련해서 도쿄도가 음식점에서 주류의 제공을 금지한 것을 두고 왈가왈부 말이 많다. 주류의 판매가 매출의 중요한 축인 음식점 측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것 그 자체를 금지하는 ‘금주령’도 아닌데 일반 시민들도 이 조치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음주 자체를 원한다기보다는 노뮤니케이션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갑갑함이 더 컸을 것이다.

한국에도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술에 취해서 나오는 말이 진심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노뮤니케이션처럼 술과 함께 하는 의사소통의 순기능을 강조한 표현이다. 음주 문화는 다를지언정, 한국이나 일본이나 술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은 매한가지다. 음주가 때때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순기능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가는 사회 활동 속에서 음주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 취향이 많이 갈리는 음주는 세련된 사적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노뮤니케이션이 샐러리맨의 관행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에서 음주를 강요하는 회식 문화가 문제시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술을 먹되, 술에 먹히지 않는’ 음주 문화를 고민해야

일본에는 “술을 먹되, 술에 먹히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술을 즐기되 스스로 감당을 못할 정도로 과음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당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금언(金言)이다. 일찌감치 ‘술에 먹혀’ 버리면 그 좋아하는 맛있는 술, 즐거운 술자리와 일찌감치 결별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음주 풍토가 점점 더 개인의 취향에 충실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는 필자도, 젊은 시절에는 음주를 강요하는 술자리가 고역이었던 기억이 많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런 고충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길 바란다. 또, 그러다 보면 맛있는 술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음주 문화도 함께 성숙하지 않겠는가도 싶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술을 동반하는 사교술의 사회적 효용을 돌아볼 기회도 생겼다. 이참에 “술을 먹되, 술에 먹히지 않는” 새로운 음주 문화를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술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픈 이 애주가의 바람이다.


김경화 문화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