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기술 '오모테나시'냐, 따뜻한 '정'이냐

입력
2021.03.31 04:30
<34> 오모테나시와 정(情)
한국과 일본, 서로 다른 환대의 문화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의 가게와 상점은 겉보기에 한국보다 친절하다. 일본에서는 궁극의 서비스를 강조하는 ‘오모테나시’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친절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문화적 코드에서 비롯된다. 일본 가게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만족감을, 정이 넘치는 한국 가게에서는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는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친절이라고 다 같은 친절은 아닌 것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의 가게는 친절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관광차 일본에 놀러 온 친구 부부를 안내해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료칸(旅館ㆍ일본의 전통적인 숙박 시설로 온천을 갖춘 경우가 많다)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룻밤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푹 쉰 것까지는 좋았는데, 도쿄의 호텔에 돌아온 뒤 친구 부부가 숙소에 여권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귀국편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일정이라 허둥지둥했는데, 긴급한 상황을 전해 들은 료칸에서 사람을 써서 밤늦게 호텔로 여권을 배달해 주었다. 덕분에 친구 부부는 무사히 귀국길에 올랐다. 배달 비용을 청구할 줄 알았는데 료칸 주인은 이 역시 서비스라며 한사코 마다했다. 돈도 돈이지만 깊은 산 속에 있던 료칸에서 도쿄까지 배달을 맡아줄 사람을 급히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고마운 마음이다.

일본의 가게는 친절하다. 물론 일본에도 불친절한 점원이 있다. 오랫동안 일본에 살면서 가게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일본의 가게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대체로 친절하고 정중하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 점원은 쇼핑백을 매장 입구까지 들어다 준다. 기껏해야 몇 만원 하는 물건을 샀을 뿐인데 점원의 깍듯한 태도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일본의 대부분 음식점에서는 손님 한 명마다 개인용 상차림을 차려준다. 반찬을 나누어 먹을 필요가 없어 깔끔하고 위생적이다. 추운 겨울날에는 계산을 마치고 돌아설 때 외투 주머니에 따뜻한 손 난로를 쓱 찔러주는 친절한 가게도 있다. 한국에서도 공공 분야에서 상점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친절한 태도, 이른바 ‘서비스 정신’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에서 경험하는 섬세한 친절함과 배려에 익숙해서 그런지, 한국의 가게에서는 점원의 말투가 무뚝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서비스의 허점도 자주 눈에 띈다.

‘오모테나시’,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는 ‘진심을 담은 극진한 접대’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2013년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유치 캠페인에서 특정해 사용하면서 화제가 된 단어이기도 하다. 일본의 유명한 여성 아나운서가 유창한 프랑스어(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었다)로 ‘오?모?테?나?시’ 라고 한 글자씩 끊어 읽으며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이색적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오모테나시를 키워드로 도쿄가 해외의 관광객들에게 안전하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을 어필한 홍보 연설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이라는 평이지만, 문화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뒷맛이 영 좋지 않았다. ‘동양의 전통적인 문화와 최고급 서양식 서비스’를 올림픽의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 것도 석연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이국적 외모의 여성을 대표 연사로 내세우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굳이 프랑스어로 수행하는 등 문화적 사대주의와 편견이 뒤범벅된 실패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도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오모테나시라는 단어가 많은 이의 인상에 남았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일본식 환대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고, 관광 대국을 지향하는 일본 국내에서도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

오모테나시는 단순하게 극진한 접대를 뜻하지 않는다. 손님의 기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예상외의 만족을 제공해야 한다는 숨은 뜻이 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이라면 맛있는 음식, 깨끗한 매장, 친절한 응대를 제공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비로소 오모테나시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손님 개인의 입맛이나 재료에 대한 호불호를 파악했다가 취향에 딱 맞는 음식을 내놓는다든가, 손님이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선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든가, 아무튼 보통을 훌쩍 넘는 궁극의 서비스야말로 이 개념이 요구하는 수준이다. 일본의 모든 가게가 오모테나시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가게의 친절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 싶다.

이렇게 친절을 추구하는 이면에 반전도 있다. 친절이 과해 오히려 불편을 주는 경우다. 예를 들어, 격식을 차린 료칸에서는 숙박객을 정성스레 배웅하는 것이 서비스 관행이다. 직원들이 료칸 입구까지 나와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특별한 환대 서비스에 대해 고마움보다는 송구스러움이 앞선다. 다음 행선지를 확인하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여유도 부리고 싶은 것이 속마음이어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서 있는 료칸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갈 길을 서두르게 된다. 과도한 친절이 손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오모테나시라는 개념 속에는 친절을 일종의 ‘기술’로 해석하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가 숨어 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스킬, 그리고 손님의 요구에 미리 철저하게 대비하는 준비 정신이 친절을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결과적으로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로 가시화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절의 실천 기술을 가다듬고 궁극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친절의 기술을 추구하는 일본, 정(情)을 추구하는 한국

일본의 스시 집에는 경륜 있는 ‘이타마에’ (板前ㆍ일식 요리사)’가 눈앞에서 초밥을 바로바로 쥐어 내주는 카운터 석의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초밥 코스를 100% 즐기는 정해진 방법은, 이타마에가 초밥을 권하는 순서와 시식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어떤 초밥은 간장에만 살짝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하고, 어떤 초밥은 소금이 어울린다고도 한다. 이타마에가 손님의 취향을 알아채는 ‘기술’을 부려 슬쩍 서비스 메뉴를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세심한 배려가 깃든 식사의 틀이 일사불란해서 손님의 돌발적인 요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내놓은 음식을 섣불리 남기거나 제멋대로의 방법으로 먹으려 한다면, 정성스레 준비한 이타마에에게 실례를 범하는 꼴이 될 것이다.

반면, 한국의 친절한 밥집에서는 가게 주인과 허물없이 교섭하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김치를 더 달라, 반찬을 더 달라 요구해도 좋고, 메뉴에도 없는 매운 고추나 참기름을 달라고 해도 선뜻 가져다 준다. 가게 주인도 과하게 손님을 배려한다고 지레 힘을 빼지는 않는다. 친절을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손님의 요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유연하게 대응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문화에서의 친절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정(情)’이라고 해야겠다. 투박하지만 융통성이 있고 인간적이다. 철저하게 준비된 배려는 없을지 몰라도, 교섭의 여지를 남겨둔 허술함이 손님에게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친절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문화적 코드는 서로 다르다. 그러다 보니 손님의 경험도 다르다. 오모테나시 정신이 살아있는 일본의 가게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정이 넘치는 한국의 가게에서는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는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친절이라고 다 같은 친절은 아닌 것이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같은 일본, 다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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