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명을 태우고 실종된 인도네시아 해군의 독일산 잠수함은 무리하게 훈련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내구 연한이 한참 지난 데다 정비마저 제대로 되지 않은 노후 잠수함을 어뢰 발사 훈련에 동원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잠수함은 3년간 잠항 훈련에 나선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탑승자들의 생존 확률이 지극히 낮아 이번 잠수함 참사는 인재(人災)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방산업계, 현지 매체를 종합한 사고 경위는 이렇다. '낭갈라(Nanggala)402'함은 전날 오전 3시(현지시간)쯤 발리 북쪽 96㎞ 해역에서 잠항 승인을 받은 뒤 연락이 끊겼다. "함 내로 물이 들어온다"는 보고가 끝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4시간 뒤 인근 해수면에서 기름이 발견됐다. 부근에 있던 구축함 등에서 사고 당시 폭발음 증언이 없었고, 지진계도 진동을 포착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사고 원인을 "침수로 인한 정전, 그에 따른 동력 계통 상실"이라고 밝혔다. 잠수함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지점은 수심 600~700m다. 해당 잠수함 상태를 고려하면 선체가 견딜 수 있는 수심은 최대 150~200m로 추정된다.
사고 당일 훈련은 다음 날 어뢰 발사를 앞두고 기능을 점검하는 모의 훈련이었다. 민간인 4명 등 정원(34명)보다 많은 53명이 승선했다. 통합군사령관 등 군 수뇌부도 참관했다. 우리나라가 지난달 인도한 신형 '알루고로(Alugoro)405'함도 참여했으나 인도네시아 해군이 보유한 어뢰는 규격이 달라 어뢰 발사는 낭갈라402함이 맡았다. 잠수함 전문가는 "발사 직전까지 진행되는 훈련 과정에서 어뢰관을 열고 닫으면서 대량의 해수가 들어왔거나, 워낙 오래된 잠수함이라 해수 계통 배관이 수압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낭갈라402함은 배수량 1,400톤급 디젤 잠수함으로 41년 전인 1980년 독일에서 건조돼 이듬해 인도네시아에 인도됐다. 잠수함의 내구 연한이 보통 25년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노후했다. 무기 전체를 해체해 완전 복구하고 개량하는 창정비는 대우조선해양㈜이 2년에 걸쳐 2012년 한 게 마지막이다. 잠수함의 창정비는 내구 연한 전까지는 6년마다 한 번씩 이뤄져야 하고, 이후엔 그 기간을 짧게 잡는 게 일반적인데, 9년간 창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잠수함의 창정비는 내년으로 예정돼 있었다. 심지어 현지 군 소식통은 한국일보에 "해당 잠수함은 2018년 이후엔 잠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비(非)정기 훈련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형 한국산 잠수함에 들어가는 어뢰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구형 독일산 잠수함으로 어뢰 발사 훈련을 강행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은 독일산 잠수함 추가 구매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잠수함 2차 사업 계약을 하고도 2년째 선수금을 받지 못한 대우조선해양은 불똥이 튈까 봐 우려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우리가 마지막 창정비를 한 건 맞지만 이미 9년 전이고 이후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낭갈라402함의 쌍둥이 함으로 불리는 독일산 잠수함 '차크라(Cakra)401'함의 창정비도 2004년 진행했다. 인도네시아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은 독일산 2척, 한국산 3척이다.
인도네시아 해군의 협조 요청을 받은 싱가포르와 호주 구난함이 현재 사고 해역으로 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체 인력도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군도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