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방역기획관 자리를 만들어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를 앉힌 것을 두고 19일 의료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방역 컨트롤타워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위에 국무총리가 이끄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있는데, 방역기획관을 통해 청와대까지 끼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원래 해오던 업무 중 일부를 분리해서 명확히 한 것이라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시점에서 청와대에 코로나19 관련 자리를 만들려 했다면 방역보다는 백신이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방역기획관은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총괄한다. 청와대 설명은 "그간 사회수석 비서관이 방역·백신접종 두 가지를 총괄했는데 방역기획관에게 방역 업무를 전담시킴으로써 더 전문적으로 방역 업무를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당장 '옥상옥' 논란이 나온다. 현재 방역업무 최고 책임자는 정 청장이다. 정 청장은 방대본부장이자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방역과 백신 접종 업무에 대한 실무 영역을 총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 청장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은 의료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나 병상 확보 등은 총리가 주도하는 중대본에서 결정을 하는 구조이다 보니 정 청장이 방역 컨트롤타워임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대본 목소리가 중대본에 막힌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에 대해선 질병청장이 전권을 가지라"고 했지만, '차관급' 청장이 그럴 수 없다는 건 뻔한 일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백신 관련 주요 발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도맡아 해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역기획관 자리까지 생긴 건 '옥상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의대 교수는 "직급상으론 정 청장이 차관급이고 방역기획관은 그 아래 1급이지만, '청와대'란 타이틀만으로도 힘이 실리기 마련"이라 말했다.
여기다 왜 백신이 아니라 방역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라는 최상위급 컨트롤타워에서 직책을 새로 하나 만든다면, 그럭저럭 성공적인 방역이 아니라 지금 곤경에 처해 있는 백신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마상혁 부회장은 "기모란 신임 기획관은 그간 정부 방역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전문가인 만큼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도 어렵다"며 "정부 부처들을 움직여 백신 수급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게 지금 청와대가 할 역할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는 '옥상옥' 논란에 선을 그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정부 전체 방역정책은 중대본이 수행하기에 청와대에 방역기획관이 신설됐다고 해서 정책이 달라지진 않는다"며 "방역기획관도 중대본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날에도 "코로나19는 모든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합동으로 매일 회의를 하면서 함께 논의하는 중대본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