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내전 임박"… 미얀마 시민들도 총 들었다

입력
2021.04.04 17:15
14면
3일 6명 사망, CNN 취재 응한 시민 납치 
114명 대학살 후 공기총 무장 시민 늘어 
소수 민족 무장단체 "국민 지지" 선언 
우리 정부, '철수 권고' 및 귀국편 추가

미얀마 군부의 광기를 향해 시민들이 총을 들었다. 군부는 살인 병기가 된 듯 민간인에 대한 유혈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피바다(bloodbath)와 대규모 내전이 임박했다"는 유엔 미얀마 특사의 경고가 무섭게 들어맞아 가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현지 주재 국민에게 "미얀마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4일 현지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전날 미얀마 각지에서 시위하던 시민 6명이 군경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최대 도시 양곤에선 군인들이 승객을 태운 버스를 멈추게 한 뒤 하차한 시민들을 집단 구타했다. 또 사복 군인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미국 CNN방송 취재팀과 2일 시장에서 인터뷰한 양곤 시민 중 최소 6명을 납치했다. 군 시설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소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권 유린이 극에 달한 것이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2월 1일 쿠데타 이후 군부에 살해된 시민이 전날 기준 557명이라고 밝혔다. 매일 9명씩 숨진 셈이다. 희생된 어린이 숫자도 최소 43명이다. 특히 지난달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엔 무려 114명이 살해됐다.

'3ㆍ27 대학살' 전후로 시위 현장에는 개인용 공격 무기를 소지한 시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 활과 화살, 새총, 사제 또는 수렵용 공기총을 든 시민들이 잇따라 눈에 띄더니 전날 양곤 시위 현장에선 사제 공기총 시민 분대가 선봉에 섰다. 이전까지 시위대의 무기는 철판, 나무판자,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수제 방패와 헬멧, 군인들 공격을 지연시키는 연막탄과 모래주머니, 깨진 유리 등 방어용이 대부분이었다. 살상용 무기의 등장은 시민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보인다.

군부는 오히려 이를 기관총, 수류탄 등 집단 살상 무기 사용의 빌미로 악용하고 있다. 시민 학살을 '교전'이라고 왜곡하고, 물리적 충돌의 책임을 시민에게 떠넘길 가능성도 높다. 절대적인 화력 차이로 시민들의 희생은 더 늘어날 게 뻔하다. 지난달 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화상 회담에서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가 경고한 대로 "대학살과 전례 없는 내전이 임박"한 것이다.

소수 민족 무장단체도 내전 양상에 힘을 싣고 있다. 주요 무장단체 10곳이 전날 화상회의를 통해 군부 폭력을 규탄하고 미얀마 국민을 지지한다는 뜻을 모았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미얀마에는 약 20개 소수 민족 무장단체에 7만5,000여 명의 병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 미얀마 민주진영은 소수 민족과 함께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출범을 선언한 바 있다.

우리 외교부는 전날 미얀마 전 지역의 여행 경보를 3단계(철수 권고)로 상향했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은 교민 귀국을 지원하기 위해 7일 항공편을 추가 편성했다. 아울러 "3일 기준 좌석 여유가 충분하며, 귀국 희망 시기 등에 대한 추가 수요 조사를 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이날 한 교민은 한국일보에 "(군부가 인터넷을 막아서) 연락은 잘 안 되지만 아직 잘 있다"고 전했다.

부활절인 이날 미얀마 시민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 경례'나 '미얀마를 구해주세요(Save Myanmar)' 등을 껍질에 새긴 '부활절 달걀'을 선보였다.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