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옵티머스 측 금융권 로비 '키맨'으로 지목됐던 양호(78) 전 나라은행장을 최근 소환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6월 수사가 시작된 후 9개월 만이다. 그간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확인하던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주민철)는 전날 양 전 행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양 전 행장을 상대로 공공기관 매출채권 투자를 가장한 옵티머스의 펀드사기 구조를 알고 있었는지, 옵티머스 성장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양 전 행장은 2017~2018년 김재현(51·구속기소) 옵티머스 대표가 이혁진(54) 전 대표를 밀어내고 회사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회사 최대주주로 올라선 그는 중요 국면마다 김재현 대표 측 뒤를 봐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옵티머스 고문 및 회장 직함을 내세워 △호화 자문단 영입 △금융감독원 로비 등을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옵티머스 주변에선 '거대한 규모의 펀드 사기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양 전 행장의 인맥과 영향력이 있었다'거나 '양 전 행장이 옵티머스 몸통'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검찰 역시 수사 초기부터 양 전 행장의 구체적 역할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양호 고문에게 매달 500만 원의 고문료를 지급해 왔다"는 관계자들 진술 외에는 뚜렷한 연루 정황이 나오지 않아 그의 공모 의혹을 규명하는 데 검찰은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선 금감원 수뇌부를 상대로 한 로비 시도를 암시하는 녹취록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2017년 양 전 행장이 비서에게 "다음 주 금감원에 가는데 거기서 VIP 대접을 해 준다고 차 번호를 알려 달라더라"고 말한 내용 등이 담겼다. 대화가 오간 시점은 옵티머스가 자본금 미달로 금감원 경고를 받을 상황에 놓였던 때로, 그가 금감원 조치를 막아보려는 '무마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양 전 행장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옵티머스 호화 자문단의 각종 정·관계 로비 동원 여부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양 전 행장은 이 전 부총리를 직접 김재현 대표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옵티머스 업무일지(본보 2020년 11월 9일자 1면)에도 '양호 고문 미팅' 일정이 나오는 등 그는 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검찰이 양 전 행장을 피의자로 입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나는 2018년 5월 이사직을 사임한 뒤, 비상근 고문으로만 일하며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양 전 행장 이외에도 정치권 로비 의혹 등을 모두 확인한 뒤 옵티머스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