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활용한 상담 호응... 20대 대학생이 움직인 日 고독·고립 대책

입력
2021.02.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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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독·고립 담당 장관 등 대책 마련 서둘러
지난해 코로나로 여성·청소년 자살 급증 계기
SNS 채팅 상담 3만6,000건 폭주... 정부 제언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고독·고립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2일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한 데 이어 19일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그간 자원봉사자들의 선의에 기대어 왔다면 국가가 책임을 갖고 고독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본격 지원에 나선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 셈이다.

계기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증가였다. 지난달 발표된 2020년도 연간 자살자 수(속보치)는 2만919명으로 1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외출 자제가 장기화하면서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들고 경제적 빈곤 등으로 사회와 가정에서 고립을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 가운데 여성과 10대 청소년들이 크게 늘었다. 남성은 전년(2019년) 대비 135명 감소한 1만3,943명이었으나 여성은 885명이 증가한 6,796명이었다. 초·중·고생은 지난해 479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러한 통계 외에 정부를 움직인 배경에는 23세 대학생의 제언이 컸다. 지난해 3월 비영리법인(NPO) ‘당신이 있는 곳’을 설립한 오조라 고키(大空幸星)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등으로 방황하면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던 자신의 고민을 정성껏 상담해 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고교 담임 선생님을 만났던 경험이 바탕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직후 원치 않은 고독·고립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상담에 나선 것이다.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전화로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으로 고민 상담을 받았다. 상담 요청의 80%가 1020대일 정도로 호응이 컸다. 설립 후 올해 2월까지 1년간 3만6,000명 이상의 상담에 응했다.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심야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거주 일본인 상담원을 확보하는 등 9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4시간 상담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를 느껴 지난해 12월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과 여야 정치인들을 만나 △고독·고립 담당 장관 임명 △분산된 상담창구 통합 △SNS 활용 등의 대책안을 제시했다. 2018년 고독 담당 장관을 설치한 영국 사례 등을 적극 참고했다. 이에 지난 1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시정방침 연설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됐다.

일본에서는 국민민주당이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 때 고독 대책 공약을 내걸었지만 선거 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격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의 극단적 선택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고독·고립 문제가 재조명 받았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말 결정할 '어린이ㆍ젊은이 육성 지원 추진 대강' 개정안에 고독·고립 문제 대응 강화를 명기하고 자살 대책을 국가의 중요 과제 규정하는 등 관계 부처에서 관련 대책을 강구해 나갈 방침이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