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력난은 인재?..."11세 어린이 동사, 75세 참전용사 호흡 곤란 숨져"

입력
2021.02.22 16:00
아들 목숨 잃은 일가족, 전력사 상대 소송 제기
"10년 전 예견된 인재(人災)...전력사들 한파 대비 안해"

심각한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진 미국 텍사스주에서 거주하던 11세 어린이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자 유가족이 전력 운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는 산소호흡기를 가동할 전력이 없어 호흡 곤란에 시달리다 숨졌다.

21일(현지시간) 휴스턴 지역방송 KHOU 등의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 콘로에 있는 한 이동식 주택에서 거주하던 11세 소년 크리스티안 파본이 16일 사망하자 가족들이 전기 공급사인 엔터지(Entergy)와 전력 운영사인 텍사스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가족은 소장에서 파본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적시했다. 검시관은 아직 사인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언론에서도 사인이 저체온증일 가능성을 유력시하고 있다.

파본의 가족에 따르면 이들은 최소 14일부터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 일가족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옷을 두세 겹으로 겹쳐 입고 모두 끌어안은 채 밤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16일 오후 파본을 깨우려고 시도했으나 일어나지 않았고, 급히 911에 신고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파본은 사망하기 전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고 가족은 전했다.

엔터지는 "공동체의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매우 슬프게 생각하며 소송이 진행 중이라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했다.

ERCOT는 "소송을 확인한 후 대응하겠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 성명에서 ERCOT는 여전히 전력 공급을 순차적으로 중단한 결정이 정당했다고 옹호했다. 민간 소유 발전기의 약 46%가 동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 전체의 정전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파본 외에도 전력이 끊겨 사망한 사례는 더 있다. 앤디 앤더슨(75)은 전력으로 가동하는 산소호흡기가 작동하지 않아 사망했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미군이 뿌린 고엽제와 접촉해 만성 폐쇄성 폐 질환에 걸렸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왔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앤더슨은 산소공급기를 가지고 다급히 전기를 찾으러 가다가 차 안에서 숨졌다.


10년 전 경고를 무시한 참담한 대가


텍사스에서는 전력난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 외에도 이번 한파로 재산 피해를 입거나 전력업체가 제시하는 값싼 변동 요금제를 이용했다가 평소보다 수십 배 높은 요금 폭탄을 맞게 되는 사례가 나오는 등 주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풍부한 전력 공급량을 누리면서 규제가 대폭 완화된 텍사스주에서는 도매 단위에서의 저렴한 전력 가격을 그대로 반영한 전력 변동 요금제를 택할 수 있다. 평소에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점을 누렸지만, 이번처럼 극단적 기상 악화 및 전력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요금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파로 인한 전력난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사실이다. 2011년 2월 1일에서 5일 사이 발생한 한파로 인해 일부 전력 공급난이 발생하자 연방에너지규제기구(FERC)와 북미전기신뢰성공사(NAERC)는 같은 해 8월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극단적 추위에 대비해 충분한 방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했다.

이 내용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민영화한 전력 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한파 등 가능성이 낮은 재난에 대비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관리당국도 이들을 적극 감독하지 않았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텍사스대 에너지연구소의 데이브 터틀 연구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2011년을 2021년으로 바꿔도 거의 유효할 것"이라며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당국이 무대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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