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美텍사스...교민들 "이틀치 전기료 38만원" "변기물 눈 녹여 써"

입력
2021.02.19 15:43
최소 31명 사망...수백만명 단수에 식량난까지
세계 3대 원유 생산지 '에너지의 땅' 아이러니

기록적 한파로 최악의 정전 사태가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州)에서 주민들이 단수·식량난 등 역대급 삼중 위기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한 한인 교민들의 피해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 측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방 정부와 다른 독립된 전력 연계망을 유지해 왔던 주 정부를 향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텍사스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지지세가 강했고 텃밭으로 꼽혀온 곳이기 때문이다.

18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는 나흘간 정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텍사스주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력 복구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한파가 계속돼 앞으로 이틀 동안 순환 정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추위 피하려다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자 발생

텍사스주 주민 수백만 명은 전기가 끊긴 15일부터 얼음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텍사스 율레스에 거주하는 티모시 윌시와 그의 부인 니콜, 7살 된 아들은 촛불의 온기에 의지해 이불 속에서 전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외부와 유일한 통신 수단인 스마트폰은 차량 시동을 켜 겨우 충전했다. 음식을 조리할 수 없어 과자와 생수로 버티고, 문을 연 식당이 있는지 틈틈이 검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에선 한파로 최소 31명이 사망했다. 추위를 피하려 차량에서 난방을 틀거나 벽난로를 쓰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주차된 차에서 지내던 일가족 2명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할머니와 손자 등 일가족 3명은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화재로 숨졌다. 포트워스에서는 어린이 1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고, 해리스에서도 200건이 넘는 일산화탄소 중독 사례가 발생했다.


국내 누리꾼들의 피해 사례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18일 텍사스 교민이라고 밝힌 누리꾼 A씨는 "지역 전기회사 중 한 곳이 전기 요금을 1㎾당 45센트에서 8달러로 올려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가구가 많다"며 "(이용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회사로 바꾸려고 해도 우선 청구된 요금이 이틀 만에 무려 38만원"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교민이라고 밝힌 또 다른 누리꾼 B씨도 "대부분의 집들이 전기 난방이어서 전기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며 "오늘 마트에 갔는데 (먹는) 물도 없다. 눈을 녹여서 좌변기 물로 쓰고 있는데 어림도 없다"고 했다.

다만 정전 피해는 차츰 전력 공급이 이뤄지면서 한때 450만 가구에서 18일 기준 55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탓" VS "석유만 믿고 대비 안 한 탓"

이런 가운데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의 원인을 둘러싸고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쟁까지 일고 있다.

16일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전체 전력망의 10%를 차지하는 풍력과 태양열 발전기의 작동이 멈췄다"면서 "이 때문에 주 전체에 전력 부족 사태가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화석연료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라면서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은 국가에 치명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로렌 보버트 연방 하원의원과 텍사스주 농업담당 커미셔너인 시드 밀러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정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 중 7일 내내 전력을 제공할 수 없는 풍력과 태양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에 전력망의 신뢰성이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반면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얼어붙으면서 난국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ERCOT는 16일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에서 가동 중단으로 손실된 전력이 30GW이고, 풍력 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의 손실은 16GW로 절반 정도였다고 밝혔다.

특히 텍사스의 이번 에너지 재난사태는 갑작스런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비한 전력연계망을 갖추지 않은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텍사스는 '에너지의 땅'이라고 불린다. 세계 유수의 에너지 회사의 본사가 집결해 있고 세계 3대 원유로 꼽히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전 세계 원윳값의 바로미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 '에너지의 땅' 텍사스에서 에너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평소 텍사스가 자신들은 에너지 수급이 충분한다는 이유로 다른 주들과 전력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폐쇄 전력망 체계를 유지한 것이 독이 됐다는 전문가 평가도 나왔다.

평상시에는 연방 정부의 조사를 덜 받고 원하는 대로 전력망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 사태에는 주변에 있는 주로부터 전력을 끌어오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손성원 기자
이은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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