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등 여권의 대선 후보 잠룡들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여권 내 재난지원금 관련 논쟁을 정리한 뒤 목소리 톤은 좀 낮아졌지만 도리어 긴장감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1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선별과 보편 어떤 것으로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고, 선을 그을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재난지원금으로 세 사람의 차별화 전략, 나아가 차기 대권 후보를 향한 주도권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차기 대선에선 경제 위기 해결 능력이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지원금 문제가 첫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20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와 정 총리의 의견을 반박하며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다만 특유의 날선 표현은 쓰지 않았다. '보편적 지급은 이르다'는 정 총리와 이 대표의 지적에 대해 "그렇게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며 최대한 부드럽게 반박했다. 앞서 사면론을 두고 문 대통령을 비판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향해 "그런 저주의 언어로 국민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겠느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라고 거친 표현을 썼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사는 "선별과 보편 지원 중 어떤 게 반드시 옳다. 어떤 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며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분들에 대해 보편 지원이 필요하고, 방역도 방해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다만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었냐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또 "정부에서 선별해서 피해가 큰 영역에 대해선 특별히 선별 지원을 하니, 저희는 이에 맞춰 선별되지 못한 사람을 포함한 일반적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게 균형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자체적으로 보편 지원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명분도 확보하면서 정부의 선별 지원 방침에 대해서도 명분을 세워주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재명·이낙연·정세균 세 사람의 어조는 차이가 있었다.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강세를 보이는 이 지사는 여유를 보인 반면, 사면 논란 이후 지지율이 빠지며 하락세를 보이는 이 대표는 날카로웠고, 두 주자 사이 빈틈을 노려야 하는 정 총리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정 총리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현재는 방역이 우선 아니냐. 지금 3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아니냐"며 "그러면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한테 지원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 지사의 보편적 지원금 지급 주장에 대해선 "모든 국민에게 다 지원을 하는 건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하고 하는 경우"라며 "지금 상황에선 차등 지원을 하는 게 옳다. 피해를 많이 본 쪽부터 지원하는 게 옳다"고 반박했다.
정 총리는 다만 "(선별적 지급을 하되 여력이 되는 지방정부는 추가 지원을 하면 된다고 한) 대통령님 말씀에 공감한다"며 "여력이 있는 지방정부가 지원을 하겠다고 하면 지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하면 이재명 지사의 자체 지원금 지급은 가능하다면서 이 지사의 손을 들어주는 듯 하면서도, 차등 지원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은 꺾지 않은 것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이 지사가 주장하는 보편적 지급은 맞지 않다는 게 총리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대신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손실을 본 부분을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선별적 지급을 주장했지만, 피해가 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 총리는 "매주 월요일 대통령께 주례 업무 보고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도 대통령님과 여러 번 논의를 해 공감대가 만들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제도화를 적극 추진할 작정"이라며 "지금은 어떻게 제도화할지 정부도 연구하고 있고 국회에도 법안이 나와 있는 상태라 가능하면 상반기 중에 그런 노력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에게 선두 자리를 내준 이 대표는 한층 강한 주장을 펼쳤다. 이 대표는 이 지사가 도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는 건 모순적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날 당 지도부가 경기도에 '지급 시점을 조절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 지사가 10만원 지급을 강행하자 작심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19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중인데, 소비하라고 말하는 건 마치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며 "그런 상충이 없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유독 말을 아꼈던 이전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이 대표가 공개된 자리에서 이 지사를 대놓고 비판한 건 대표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라는 평가들이 쏟아졌다.
일부에선 이 지사와 대립 각을 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동시에 이 지사가 방역을 우선하는 여당·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란 관측을 내놨다.
이 지사는 이에 대해 "이 대표께서 특정한 표현으로 충고해 주셨다"며 "시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지사는 "이 대표께서도 소비 진작을 위해 (1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빵집에 가서 빵을 사는 인증 사진을 찍었다"며 "(경기도도) 방역을 방해하지 않고 충분히 소비를 할 수 있다. 재난기본소득 지급 및 소비 과정에서 방역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