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수술까지, 영업사원이 버젓이 보조

입력
2018.09.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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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진 큰 수술재료 납품 위해… 척추ㆍ관절병원서 만연 

 중소ㆍ전문병원선 직접 대리수술… 환자들만 이중 피해 

의료기기 유통 경로=그래픽 강준구 기자
의료기기 유통 경로=그래픽 강준구 기자

최근 부산지역에서 적발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이 척추나 관절 등을 다루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 만연해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의료윤리를 저버린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병ㆍ의원, 전문병원은 물론 심지어 종합병원에서조차 이들에게 대리수술이나 수술 지원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의료기기 업체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뒤 현재 의료기기 인허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40세 여성 K씨는 27일 “전국의 병의원, 전문병원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관절 및 척추수술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의 참여율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며 “기기 조작 등 수술에 필요한 단순 지원이 아닌 수술보조, 심할 경우 대리수술까지 행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간헐적으로 드러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뿌리 깊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익 추구 병원ㆍ업체 공생관계 

K씨가 대면 인터뷰와 전화 통화, 그리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한국일보에 폭로한 의료기기 영업사원 대리수술 실태는 매우 구체적이다. K씨는 10여년간 다국적 기업과 국내 의료기기 업체 5,6곳에 몸을 담으며 주로 판매 총괄과 영업사원 교육ㆍ훈련 역할을 맡아왔다. 병원들과 영업사원 수술 참여 협상 역시 그의 몫. K씨는 의료기기 업체들은 영업사원들의 수술 참여가 ‘수술지원’이란 명목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의료기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영업사원들에게 기기 사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도움을 받는 것으로 포장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실제로는 직접적인 수술 보조를 시키거나 아예 수술을 맡겨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K씨는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대리수술 사건에 대해 “이번에 의료사고를 낸 업체는 병원에 회전근계파열 수술에 사용되는 ‘숄더 앵커(shoulder anchor)’라는 의료기기를 납품했는데 이 기기는 마진율이 높지 않아 직원들이 대리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마진율이 높은 다른 의료기기를 병원에 납품하기 위해 서비스 차원에서 대리수술을 감행했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고가의 의료장비들을 병원에 납품해 이익을 얻지만 주 수입원은 의료장비가 아닌 수술재료 납품이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척추수술에 쓰이는 수술재료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라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다. 업체들이 수술재료 납품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다. K씨는 “척추수술 치료재료 업체의 마진율은 최소 60% 이상”이라고 털어놨다.

척추수술과 달리 관절수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라서 상대적으로 수술재료를 납품해도 척추수술만큼 이익을 보지 못한다. 의료장비도 한번 들어가면 새로운 기기가 출시되기 전까지 사용되기 때문에 결국 업체들이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마진율이 높은 수술재료를 납품해야 한다. K씨는 “마진율이 높은 척수수술 재료를 지속적으로 병원에 납품하기 위해 영업사원들이 마진율이 낮은 관절수술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담합해 부르는 게 ‘값’, 환자만 ‘호구’ 

업체와 병원 간 은밀한 거래로 결국 ‘호구’가 되는 것은 환자다. 업체와 병원은 각종 수술에 필요한 수술재료 가격을 미리 정해 거래한다. 업체는 별도의 사업자를 설립해 만든 ‘간납업체’를 통해 병원에 수술재료를 납품한다. 간납업체는 병원 측으로부터 지정된 수수료를 받고 병원을 대신해 각종 의료장비와 수술재료 구입을 대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인공디스크 수술에 사용되는 수술재료 비용을 550만원에 받겠다고 책정하면 의료기기 업체는 제조사에서 200만원에 구입한 수술재료를 자신이 만든 간납업체에 500만원에 납품한다. 간납업체는 다시 병원에 550만원의 가격에 공급한다. 표면적으로 간납업체의 마진율은 10% 수준이지만 업체는 납품을 통해 350만원의 이익을 챙긴다. 대신 업체는 병원과 이면계약을 통해 발생 이익의 10~30% 정도의 금액을 병원 측에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백 디시(Back DC)’라고 한다. 업체와 병원들이 담합해 수술재료 비용을 높게 책정하면 할수록 환자가 부담해야 할 수술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K씨는 “간납업체들과 이면계약을 맺고 있는 전문병원들에서 환자가 ‘봉’이 되는 일은 다반사”라고 전했다.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이 주로 하는 대리수술=그래픽 신동준 기자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이 주로 하는 대리수술=그래픽 신동준 기자

◇의료인력 부족도 한 원인.. 종합병원까지도

대리수술이 단순히 이익만을 위해 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인력 부족도 한 원인이다. 관절, 척수수술의 경우 뼈의 절삭, 수술부위 확보 등을 위해서는 다수의 의료진이 필요한데 전문병원이나 병의원들은 인건비 문제 등으로 의료진 확보가 쉽지 않아 영업사원들을 수술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예 손 기술이 뛰어난 영업사원들은 병원직원으로 위장해 병원에서 대놓고 의사를 도와 수술을 지원한다고 K씨는 말했다. 그는 “이들 영업사원들의 급여는 병원과 업체에서 나눠 지불하거나, 영업사원이 병원에 다른 의료기기를 판매해 업체와 이익을 분배한다”고 털어놨다.

고관절, 슬관절, 소아정형, 견주관절, 척추 등 다양한 부위를 수술해야 하는 진료특성도 정형외과에서 대리수술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K씨는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종합병원에서 전임의(펠로우)로 근무하더라도 자신이 전공한 특정 분과만 집중 실습한다”며 “막상 개원을 하게 되면 모든 수술을 커버할 수 없어 자신과 거래하는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의 손을 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종류의 환자를 한정된 인원이 진료하고 수술까지 해야 하는 개원가에서 영업사원의 수술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중소 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에서도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의 수술참여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그는 “물론 대학병원에서는 부산 사건처럼 영업사원이 수술을 집도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영업사원들이 수술 시 뼈를 절삭할 때 환자를 견인하거나, 멸균된 수술 기구 중 빠진 기구가 없는지 등을 점검하는 수술보조자 역할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지던트와 함께 수술을 하면 수술시간이 5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영업사원과 수술을 하면 2시간 내 끝낼 수 있어 저녁 약속이 있거나 퇴근을 빨리 하고 싶은 교수들이 영업사원들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지역 대학병원에서는 수술보조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의사들, “의료기사 자문 구하는 것은 사실”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 간의 부적절한 공생관계에선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평소엔 병원 측이 기기 구매를 명목으로 대리수술을 시키는 등 ‘갑질’을 하지만, 병원에서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려 할 경우 대리수술에 발목이 잡혀있어 업체를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리수술을 폭로하겠다는 업체의 협박에 시달리다 해결책으로 병원 내 간호사들을 ‘의사보조 인력‘이라 불리는 PA(Physician Assistant)로 양성해 수술에 동원하고 있는 병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취재에 나서자 대부분 의사들은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일부 의사들은 수술 시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현실 자체는 시인했다. 서울의 한 척추전문병원 원장은 “영업사원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특정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수백 건 이상의 수술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수술재료 선택과 새로운 의료기기를 이용해 수술을 할 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대리수술은 안 되지만 의료기기 작동 등에 대해 자문을 구할 수 있게 이들의 수술참여를 일부 합법화시키는 것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강력하게 규제해야 되지만 새로운 의료기기를 사용해 수술을 할 때 기기조작 등 수술과 관련된 조언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도움 없이는 일선 병원에서 수술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이 수술지원을 핑계로 수술방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있지만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각종 수술 시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들이 왜 필요한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된 것이 없다”며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하는 것은 분명 불법의료행위지만 수술 시 단순히 의료기기 작동과 관련된 정보를 조언하는 등 수술실 출입자체를 통제해야 할지 여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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