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속의 어제] “빈민의 영웅” “독재자”… 차베스 사망 5년, 망가진 베네수엘라

입력
2018.03.04 15: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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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계급 영웅, 남미 좌파 반미 블록 좌장, 독재자 다양한 평가 받아

차베스 사후 5년 리더십 검증되지 않은 마두로 등장, 정치ㆍ경제 혼란 가속화

남미 좌파의 좌장이었던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미 좌파의 좌장이었던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3년 3월5일 암 투병 끝에 58세로 숨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현대사에 명과 암을 드리웠다. 일찍부터 남미의 독립운동영웅 시몬 볼리바르와 칼 마르크스 등에 심취했던 그는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1998년 집권과 함께 급진적이고 포퓰리즘적인 복지정책을 시도했다. 2000년대초 국제유가 급등으로 확보된 엄청난 재정을 바탕으로 빈민ㆍ원주민ㆍ장애인 등 소외계층에게 전면적 무상복지를 시행했고, 외국 자본이 소유한 석유회사를 국유화해 채굴ㆍ정유 산업의 50%를 국영화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영향력에서 벗어난 중남미 통합을 추구했다. 쿠바,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주변국에 값싼 석유를 공급하면서 반미 블록의 상징 인물이자 남미 좌파의 맏형을 자처했다. 재임 기간 정부 세입의 60% 이상을 사회복지에 투입, 2003년 62.1%였던 빈곤율은 2011년 31.9%까지 떨어지고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면서 차베스 대통령은 빈민ㆍ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석유산업 국유화 이후 산업기반이 와해되면서 연간 20%를 훌쩍 넘는 인플레이션과 생필품 부족으로 집권 말기에는 민심 이반 현상을 겪었다. 자신에 비협조적인 사법부를 공격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보도를 통제하는 등 반대자들을 강력히 탄압해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차베스 사망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 후계자임를 자임하며 승리한 니콜라스 마두로(56) 현 대통령도 차베스식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유가 폭락으로 인한 재정 악화, 높은 인플레이션, 사회적 불안 등이 겹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의 야당 압승, 지난해 발생한 대대적인 반 정부 시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12%, 물가상승률은 652%로 국가 부도 위기 상황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반정부 인사 등 수천명을 체포하고,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를 무력화하려고 지난해 7월 친여성향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등 일방적 국정운영에 매달리고 있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베스의 개혁 방향은 옳았지만 개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정당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지 못하고 개인 지지율에만 의존했던 게 문제였다”면서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고 카리스마도 없는 마두로는 차베스 따라하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무리한 권력 유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선문대 스페인어 중남미학과 교수(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장)는 “차베스 개혁이 없었으면 고유가로 인한 거대한 이익이 미국기업, 일부 부유층, 부패한 노조에 돌아갔을 것”이라면서도 “차베스가 정치적으로 지지기반 확장에만 신경을 쓰면서 자본가ㆍ중산층들이 위기를 느꼈고, 석유산업 국유화로 미국과 대립하게 되면서 이후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고 평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그림2 2013년 3월 14년 동안 남미의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다 사망한 차베스 대통령의 시신이 카라카스 군사학교로 옮겨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림2 2013년 3월 14년 동안 남미의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다 사망한 차베스 대통령의 시신이 카라카스 군사학교로 옮겨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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