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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60년대 인도네시아 50만명 반공학살 알고도 묵인

입력
2017.10.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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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도네시아 대사관 외교전문 기밀 해제

반공 정권 수립에 “환상적인 전환”

진실 추구 활동에 보수진영은 “공산주의자” 낙인

행인들이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판카실라 사크티 기념물에 있는 7인 병사상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소행으로 알려진 쿠데타에 저항하다 사망한 인물로 기념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1965년 쿠데타 제압 후 전국에서 공산주의 지지자로 분류된 민간인 50만명을 살해했다. 자카르타=AP 연합뉴스
행인들이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판카실라 사크티 기념물에 있는 7인 병사상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소행으로 알려진 쿠데타에 저항하다 사망한 인물로 기념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1965년 쿠데타 제압 후 전국에서 공산주의 지지자로 분류된 민간인 50만명을 살해했다. 자카르타=AP 연합뉴스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1965년) 상황을 미국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사실상 묵인했다는 내용의 기밀 문서가 공개됐다.

AP통신 등은 17일(현지시간) 최근 기밀 지정이 해제된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 기밀문서를 인용해 미국 외교관들이 당시 약 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 학살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눈감았을 뿐 아니라 외려 이를 주도한 수하르토 장군의 친미 군부정권 수립을 축하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지지자 가운데 최소 50만여명이 1965년 쿠데타를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인도네시아 군부의 명령을 받은 병사와 민병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196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공산당이었던 PKI는 철저하게 붕괴했다. 당시 수하르토 장군은 PKI가 쿠데타의 배후라고 지목하면서 이들을 척결한다는 명분 아래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고, 이를 기반으로 대통령에 취임해 33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 문서에 따르면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은 학살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965년 11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있는 미국 영사관이 보낸 전문은 “자바 동부의 한 학살극에서 공산주의자 최소 1만5,000명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만연한 살해의 증거”라고 전했다. 한 달 뒤에 같은 영사관은 정부가 수감된 공산주의자를 민간인에게 데려가 살해당하도록 놔뒀다는 전문도 보냈다.

이들 민간인은 수하르토 정권의 학살극에 공모한 이슬람교 단체를 가리킨다. 수마트라섬 서부 메단의 영사관은 당시 인도네시아 내 최대 무슬림 단체 ‘무하마디야’에 속한 한 설교자가 “공산주의자들은 불신자 가운데서도 최하급”이라며 “이들을 죽이는 것은 닭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학살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다는 보고를 보냈다. 정작 이렇게 학살당한 이들의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미국은 수하르토가 이끄는 친미 반공 정권의 등장을 환영하기까지 했다. 이 해 12월 21일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의 1등서기관 메리 밴스 트렌트는 본국 국무부에 이미 10만명이 학살당했다면서도 “불과 10주 만에 환상적 전환이 있었다”는 전문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의 강성한 공산당 세력이 괴멸되고 친미정권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또 10월 중순 대사관을 찾은 부중 나수티온 인도네시아 법무부 특별보좌관에게는 수하르토와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에서 1960년대 대량학살에 관한 논의는 지금까지 금기시되고 있다. 정부는 학살 생존자와 군인들이 참가하는 공개토론회를 열어 과거사 청산을 시도했지만 군부와 경찰 일각에서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이슬람교 집단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반공산주의’ 열풍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자카르타 도심에서 열린 학살 사건을 다루는 시민운동가들의 토론회가 퇴역 장성이 주도하는 성난 군중의 침탈에 밀렸고 경찰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미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했음에도 인도네시아 보수 정치권에서는 반대파 공격에 ‘공산주의자’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권변호사 베로니카 코만은 AP통신에 “1965년에서 66년 사이 인도네시아 대량 학살은 세계 최악의 범죄일 뿐 아니라 우리 국가의 가장 어두운 비밀”이라며 “당시 학살 생존자들이 너무 나이 들어 그들이 죽기 전 정의의 실현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그는 “공개된 기밀 문서가 진실을 드러내고 가해 집단에 책임을 지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안드레아스 하르소노도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학살극에 관련된 모든 문건을 기밀 해제해야 한다”라며 “정확한 역사기록을 밝혀야 이들 범죄 행위에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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