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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처벌하는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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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육군보통군사법원에선 동성과의 성관계로 군형법92조의6(군형법상 추행죄)항의 위반 혐의를 받았던 A대위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대위는 최근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및 처벌 사건에서 제일 먼저 체포된 인물이었다. 이달 25일 전역 예정이었던 그는 서울 출장 중이던 지난 13일 긴급 체포됐다.
이날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육군 중앙수사단사이버수사팀이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인 40~50여명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폭로했다. 육군본부는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장 총장이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으며,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 현역 군인이 동성 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해 수사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군인권센터는 17일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의 입장을 반박했다. 올해 초 발생한 동성 군인 간 성관계 동영상이 SNS에 유포된 사건 수사와 상관없이 육군이 이 수사과정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동성애자 군인 명단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속된 A대위 역시 동영상 유포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한국의 유일한 동성간 성관계 처벌법, ‘군형법92조의6’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수사와 인신구속까지 이뤄진 것은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배경은 바로 군형법92조의6, 군형법상 추행죄다.
제92조의6(추행)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항부터 3항까지는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을 규정한 조항으로, 결국 항문성교를 하는 군인을 처벌한다는 조항이다. 현행법은 2013년 개정된 것으로, 1962년 제정된 ‘군형법’ 제92조에는 ‘계간’과 기타 추행을 처벌하는 조항이 담겨있었다. 계간은 남성간의 성행위를 비하하는 단어다.
이 조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성소수자 인권 침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등의 이유로 세 차례나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헌재는 군형법 92조를 2002년 재판관 6대2, 2011년 5대4, 지난해 7월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13년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해당 조항 폐지법안을 발의했지만, 국방부와 보수 기독교계의 압박으로 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으로 변경, 개정 시행됐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조항은 지속적인 폐지 압력을 받았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11월 발표한 최종권고문에서 “한국 정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며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군, 2013년 합의한 동성간 성관계 금지 내용 삭제
한편 한국 군형법의 모델이었던 미군은 2013년 합의한 동성 간 성관계 금지 내용을 삭제했다. 2003년 미국연방대법원이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소도미법’이 위헌이라고 선고한 이후, 미국의 통일군사법전(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UCMJ)상의 소도미조항 중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해선 처벌이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태였다. 이후 2013년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선 UCMJ 제125조 중 합의한 동성 간 성관계 금지 내용을 삭제했다.
“군형법92조의6 헌법상 평등권 침해… 개정 아닌 폐지돼야”
군형법상 추행죄의 존치를 주장하는 입장은 위계를 이용한 성행위 강요 방지와 군대 내 기강 확립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강제추행죄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다 군대 밖에서의 사생활까지 통제해야 되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가람 변호사는 “이 조항에 따르면 휴가 중에 동성 연인끼리 집에서 성관계를 해도 처벌한다”며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들을 보면 현대국가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2월에도 인천지방법원이 직권으로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는데 당시 사건 가운데 휴가 중 자택에서의 성적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이 포함됐다.
한양대 로스쿨 박찬운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군형법상 추행죄는 사실상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법”이라며 “개정이 아니라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조항만 놓고 보면 이성애자라 할지라도 항문성교를 하면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항문성교는 대체로 동성애자들의 성행위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애초에 동성애자들이 법의 타겟”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하지만 똑같은 항문성교를 했어도 이성애자가 이를 부인하면 처벌할 방법이 없기에, 동성애자만 처벌하게 되는 이 법은 헌법상 평등권을 위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법은 결국 국가가 성행위의 방법을 결정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은밀한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건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에게만 편파적으로 적용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성소수자 단체들은 대선 후보들에게도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일부 대선 후보들의)’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을 반대한다’는 책임 보류 속에서 군형법상 추행죄는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하라는 지시의 명분이 되고, 동성애 차별과 반인권적 조사과정의 기반이 되고 있다”며 “대선후보들은 하루빨리 인권의 요구를 엄중히 받아들여 동성애 처벌법인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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