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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펴낸 임지현 교수

임지현 교수가 14일 서강대 연구실에 한국일보와 만나 박근혜정부 위기와 촛불시위를 자신의 대중독재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산업화ㆍ박정희 신화 벗어날 계기
다수파 민주주의 옳은지도 고민을
신작 에세이, 英ㆍ美 유학 안 가도
세계서 통한다는 점 알리고 싶어

“저는 맑솔로지시트(Marxologist)입니다.”

박사논문 심사가 한창이던 1988년 ‘당신 마르크스주의자냐’는 한양대 교수의 추궁에 엉겁결에 내놓은 답이었다. 임용을 앞두고 면접을 봐야 하는 교수로서는 어쨌든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갔으니 그 정도 답변이면 됐고, 답변자 역시 생계 때문에 사상을 팔지 않아도 됐으니 그 정도 답변이면 된 셈이다.

맑솔로지스트란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듯 “이데올로기는 지식인의 아편”이라 믿는다는 의미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조금 더 직관적으로 풀어내자면 이렇다. “주변부로 오면서 노동 해방 이데올로기에서 후진국 근대화론으로 둔갑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파 과정”에 대한 얘기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박정희의 ‘시장스탈린주의’와 ‘후진국 근대화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좌파에서 우파로 고통스럽게 전향했다는 안병직(서울대)ㆍ이영훈(서울대)ㆍ김문수(전 경기지사) 등 소위 ‘뉴라이트’의 정체는 근대로 가는 열차라면 극좌든, 극우든 아무 상관없는 ‘맹목적 근대주의자’들일 뿐이다.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맑솔로지스트’라는, 엉겁결에 내놓은 대답이 의외의 명답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명답은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이후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한중일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 ‘변경사’ ‘트랜스내셔널’처럼 ‘민족ㆍ민중ㆍ민주’ 성(聖)삼위일체에 대한 신성모독적 주장을 내놓고 국제연구를 주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임지현 서강대 교수가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소나무 발행)를 내놨다.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라는 부제처럼 연구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묶어 내놓은 에세이집이다.

박헌영ㆍ김단야와 함께 ‘조선공산당의 트로이카’라 불렸던 거물이자, 같이 살았던 페미니스트 허정숙이 딴 남자와 사랑에 빠지자 고이 보내준 쿨가이‘임원근’이 친할아버지였다고 처음 밝혔다. 그 임원근은 ‘예전 빨갱이’ 박정희가 대구 군수사령관이던 시절 질펀하게 술자리를 벌이기도 했다. 박지만과 함께 배문중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졸지에 ‘왕립중학교 학생’으로서 누렸던 각종 특혜 얘기도 있다. 미국ㆍ유럽으로 유학가던 분위기에서 국내파로 잔류한 이야기, 이후 폴란드로 공부하러 간 이야기, ‘우리처럼 보드카 잘 마시는 이상한 한국 친구가 있다’는 소문에 폴란드 사람들에게 환대받은 이야기 등등이 빼곡하다. 약장수처럼 말하자면,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큭큭대며 읽을 수 있는 블랙유머가 쏠쏠하게 배어있는 고급 에세이다.

‘서벌턴은 이미 말했으나 역사가가 이를 듣지 못한 게 아닐까’란 깨달음에 이제는 역사가라기보다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가 되고 싶다는 임 교수를 14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학문적 여정을 정리한 책을 낸다는 건, 뭔가 마침표의 느낌이 강한데.

“그렇진 않다. 2024년이 정년이니 아직 7년이나 남았다. 다만 후배들에게 영미권 유학파가 아니라 해도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도전하면 세계 학계에서 통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일본 상지대와 연결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과정을 개발 중이다. 잘 풀려나간다면 우리 문제의식에 기반해 서양사를 잘 소화해낸 박사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1980년대에 연구대상으로서의 폴란드는 참 의외의 선택이다. 박지향 교수가 아일랜드에서 한국을 봤다면, 폴란드에서 한국을 본 셈인데.

“1990년대에 ‘폴란드 민족운동사’라는 책을 이기백 선생님께 드렸더니 ‘책을 읽어갈수록 한국 역사가 생각난다’는 답장을 주셨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120년 동안 지배당했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600만명이 죽었다. 600만명은 당시 폴란드 인구의 25%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피해자 의식’과 ‘민족주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협력도 했다. 많은 측면에서 한국과 오버랩 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보면,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대중독재’ 주장이 옳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만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브렉시트 충격의 영국 등이 다 그 범주에 있다.안 그래도 몇몇 미국 학자들은 트럼프 당선 뒤 “우리도 대중독재다”라는 메일을 보냈더라.”

-촛불집회는 대중독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봤나.

“주말마다 참여하느라 고생 좀 했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대중독재와 결별할 찬스다. 박정희 신화, 산업화 신화가 탈신화화 되는 계기다. 막연하게 그 때가 좋지 않았나 생각했던 젊은 사람들도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저어되는 점도 있다. 촛불집회에 가면 ‘국민의 명령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같은 표현을 쓰는데, 다 아다시피 박정희의 유신헌법이야 말로 인민주권의 산물이다. 서구식 민주주의에 물든 비판적 지식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국민투표를 쓴 것 아니냐. 지금 가장 성찰해야 하는 대목은 애당초 우리는 왜 그들에게 표를 몰아줬느냐다. 명예혁명이란 분위기에만 취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정말 박정희의 탈신화화, 가능한가. 박근혜정부 지지율이 4, 5%라는 점을 근거로 그런 얘기가 나오지만, ‘샤이 트럼프’처럼 ‘샤이 박근혜’ 또한 여전하지 않은가.

“그렇다. 촛불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위주의 가치관이 여전하다면 ‘박근혜정부는 조국 근대화의 잘못된 유산이다, 진정한 유산을 보여주겠다’라는 쪽이 다시 뽑히게 되어 있다. 참여정부가 ‘과거 청산하겠다’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여러 일을 벌였지만, 정작 국정목표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었다. 2만달러 달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박정희의 유산 아니었던가. 어찌 보면 1987년 이후 이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있어야 했지만, 이제까지 미루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본다.”

-결국 변하는 건 없나.

“문제는 ‘대중독재’와 ‘대중민주주의’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다. 프랑스혁명 이래 국민주권, 인민주권은 절대화됐다. 거기서 탄생한 것이 다수파 민주주의다. 그런데 다수파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옳은 것인가. 전세계적으로 보면 잔혹한 정치적 학살은 다수파에 의해 저질러졌다. 우리는 그렇게까진 가지 않았지만, 이명박ㆍ박근혜정부 내내 이어진 것이 소수파에 대한 배제와 박해 아니었던가. ‘넌 국민이 아니다’라는 낙인 아니었던가. 이건 대중민주주의라고 승인해야 하는가, 대중독재라고 배척해야 하는가. 손쉽게 우리 쪽에 나쁜 짓 많이 했으니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라고 답하지 말고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임지현 교수가 14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자신의 책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대중독재’ 때문에 정치인들 욕하지 않고 왜 대중을 욕하느냐고 비판 많이 받았다. ‘진정한 좌파적 기획임을 못 알아봐줘 섭섭하다’고도 했다.

“이분법 때문에 고생했다. ‘대중독재’뿐 아니라 우리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같은 말도 만들어 썼으니 말이다. ‘넌 누구 편이냐’는 소리 많이 들었다. 특히 진보쪽에서 특별히 불편하게 여겼던 점이 흥미로웠다. 그 때도 말했듯 나도 ‘대중독재 개념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보라는 분들도 이제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대중독재가 맞다고 인정하기 싫으니 ‘야당의 전략이 잘못됐다’ ‘선거부정이 있었다’ 같은 소리를 한다. 트럼프의 승리도 ‘표 수로는 힐러리가 더 많으니 진짜 대통령은 힐러리다’고 한다. 나는 이런 반응이 지적 게으름이라 생각한다. 이명박ㆍ박근혜정부, 트럼프정부 모두 표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면 정말 깊이 생각할 문제는 왜 사람들은 그들에게 투표했느냐다. 촛불과 성찰이 함께 가야 한다.”

한ㆍ일ㆍ베트남, 역사 기억 제각각
화해 위해선 ‘역사 레짐’ 바꿔야

-‘기억활동가’라는 개념이 궁금하다.

“내가 요즘 즐겨 하는 말이 ‘정치적 레짐 체인지’ 말고 ‘기억 레짐 체인지’를 하자는 것이다. 가령 박근혜, 시진핑, 아베가 없으면 한중일 화해가 될까. 우리는 일본을 가해자로 기억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서구의 피해자라 기억한다. 우리는 우리를 피해자라 기억하지만, 베트남은 가해자로 기억한다. 우리는 일본의 가해가 전대미문의 것이라 기억하지만, 일본 식민지 가운데 희생자 수로 따지면 우리가 가장 적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런 곳은 200만, 100만인데 우리는 징병ㆍ징용 희생자가 10만 정도 된다. 적다거나 문제가 없다거나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대로, 일본대로, 중국대로, 각자대로 자기만의 기억을 절대화해서는 문제가 안 풀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서로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한다. 소수자들은 이미 말하고 있다. 우리가 듣지 못하거나 안 들으려 할 뿐이다.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일 때 기억의 레짐 체인지가 일어난다. 그 목표를 위해 뛰는 이가 기억 활동가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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