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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대로 했는데 왜 안 되지?” 독해력이 문제야

입력
2016.01.13 04:40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안 되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안 되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 요리 해물 파에야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장을 본 A씨. 홀토마토에 샤프란, 새우와 모시조개, 피홍합, 오징어까지 사다가 요리책의 레시피대로 깔끔하게 손질했다. 마침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재료들을 볶을 차례. 하지만 레시피의 4번 항목에서 그만 막혀 버렸다. “씻어서 물기를 뺀 쌀을 넣어 볶다가 분량의 물을 부어 계속 볶는다.” ‘얼마를 볶으라는 거지?’ 고민하는 사이 쌀은 눌어붙고 당황한 A씨는 해물과 화이트와인을 넣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렸다.

파에야는 본래 파스타를 알덴테로 삶듯 쌀의 심이 씹히도록 살짝 덜 익혀 먹는 요리인데, A씨의 파에야는 오도독 씹히는 것이 거의 생쌀에 가까웠다. 파슬리 가루까지 뿌려 접시에 내놓은 파에야는 다시 프라이팬으로 돌아가야 했고, 영 먹을 만한 비주얼이 아닌 채로 식탁에 돌아왔다. A씨는 레시피의 저자를 원망했다.

왜 레시피는 읽기가 어려운 걸까? 레시피대로 요리를 했는데도 실패하는 일이 많은 이유는 뭘까? 소설책 읽듯 맛을 상상하며 요리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전문가들에게 레시피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비법을 물었다. 내 요리가 실패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기초단어 및 구문을 익혀라

분명히 한글로 쓰였는데, 이해가 안 되는 글들은 많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요리도 마찬가지. 일단 레시피 독해가 불가한 이유가 나의 기초지식 부족 때문인지 레시피 자체의 결함 때문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준비한 채소들로 가니쉬를 올린다”라고 하면 가니쉬가 접시를 장식하기 위해 곁들이는 채소라는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양념을 계량하는 단위인 T는 테이블스푼 또는 큰술로 15㏄ 분량이며, t는 티스푼 또는 작은술로 5㏄를 나타낸다. TT는 ‘To Taste’, 즉 취향대로를 뜻한다.

많은 요리 초보자들을 분노케 하는 레시피의 언어는 주로 두루뭉술한 기술들, 육하원칙에 누락이 있는 문장들에 기인한다. ‘취향대로 넣는다’, ‘알맞은 크기로 썬다’, ‘적당히 익힌다’, ‘약간 넣는다’ 등 감에 의존해야 하는 스킬들을 요구할 때 대부분 당황하게 마련. 고병욱 ‘태번38’ 셰프는 “그런 표현들은 레시피를 쓰는 사람도 시간과 분량을 특정하기가 애매해서 그런 것”이라며 “사람마다 입맛이 다 제각각인 간 맞추기는 개인의 취향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내 입맛에는 소금 1테이블스푼이 적당한데 어떤 사람은 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싱겁다고 하거든요.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 ‘적당히’ ‘알맞게’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미예요. 대충 하고 넘어가도 대세에 지장이 없습니다.”

레시피에 누락과 비약이 많은 이유는 독자들이 간단한 레시피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기술한 레시피는 외견상 복잡한 요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줄이고 또 줄이는 과정이 반복된다. 종이컵 계량, 밥숟가락 계량이 유행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간편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요리와는 멀어진다. 요리책을 많이 낸 성안북스의 전희경 본부장은 “한때 간편계량법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역시 정확하게 하려면 계량스푼으로 하는 게 좋다”며 “지난해 요리가 크게 유행했다지만 아직까지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불의 세기와 조리시간, 식재료 손질법 등을 자세하게 기술하는 책들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레시피가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하고 무심하게 넘어가는 대목에서 자주 좌절한다면, 일단 기본 어휘 및 구문을 확장하자. 대뜸 등장하는 ‘손질한 새우’에 당황하지 말고, ‘시금치는 데쳐놓는다’에서 얼마나 데치란 말이냐며 절규하지 말자. 데친다는 것은 생야채를 끓는 물에 넣어 표면을 가볍게 익혀내는 것이고, ‘물을 자박자박하게 붓는다’는 건 건더기가 겨우 잠길 정도로만 물을 채워넣는 것을 말한다. 새우의 내장을 제거한다는 것은 구부러진 등쪽으로 길게 보이는 검은색 내장을 이쑤시개로 콕 집어 뽑아내는 것이며, 소금물에 굴을 씻는다고 할 때는 물 1리터에 소금을 밥 숟가락으로 2, 3번 넣어 염도 2% 정도로 맞춘 물을 의미한다. 수돗물에 굴을 씻으면 굴 고유의 풍미가 맹물맛에 덮여버리기 때문. ‘조개를 해감한다’는 조개를 깨끗이 씻은 후 소금물에 담가 검은 봉지로 싸맨 후 하룻밤 모래를 토해내게 놔둔다는 뜻이다.

레시피와 비슷한 결과를 내려면 이미 그 맛을 잘 아는 요리를 정해 조리과정 전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레시피와 비슷한 결과를 내려면 이미 그 맛을 잘 아는 요리를 정해 조리과정 전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많이 먹어본 요리에 도전하라

레시피를 보고 음식을 만들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레시피 전체를 숙지하지 않은 채 한 줄 단위로만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요리도 교통과 같아서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데, 전체 레시피를 머릿속에 넣어두지 않으면 역주행이나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양파, 당근 등 준비한 채소들을 다져 끓는 육수에 넣는다”는 5번 항목에서 이미 채소가 다져져 있지 않다면, 가스레인지를 끄는 수밖에 없고, 이미 끓는점에 도달한 육수에서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셰프는 그래서 “잘 아는 음식, 많이 먹어본 요리에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은 개념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조리과정에 확신이 없고, 그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레시피는 문자를 감각으로 변환시키는 상상력을 요하는 독서다. 고병욱 셰프는 “레시피는 글로 돼 있고, 상상과 경험에 베이스를 두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편차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고기를 굽는다”라는 항목을 보고도 고기의 두께, 익힘 정도, 크기 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셰프인 저도 레시피대로 요리했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걸요. 하지만 유튜브 동영상은 거의 실패하지 않아요. 수많은 여분의 정보를 시각적으로 동시에 제시해주니까요.”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조리용 온도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탐침을 고기 등 식재료에 꽂기만 하면 내부 온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조리용 온도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탐침을 고기 등 식재료에 꽂기만 하면 내부 온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리용 온도계를 구비하라

요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온도다. 레시피가 요구하는 ‘180도의 끓는 기름’, ‘163도로 예열된 오븐’ 등의 구절 앞에서 좌절하는 것은 온도 측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오븐은 기계식으로 온도 조절이 가능하지만 가정용 오븐은 온도편차가 심해 계기판의 숫자와 실제 온도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오븐 기종과 사이즈에 따라서도 내용물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다르다.

“프로가 작성한 레시피는 전문가용 오븐을 이용한 거라 오븐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실내외 온도차가 없어요. 열량이 풍부하죠. 반면 가정용 오븐들은 소화해낼 수 있는 내용물의 최대 용량이 1, 2㎏ 정도예요. 소량 조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죠. 열이 달려서 대량요리를 하면 삶아지는 효과가 납니다.” 어윤권 셰프는 “가정에서 오븐 요리를 할 때는 오븐의 계기판만 믿지 말고 본인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스테이크는 최대 6인분, 800g까지가 레시피와 싱크로율을 70% 정도 맞출 수 있는 분량”이라고 말했다. 2인분까지는 거의 편차 없이 조리효과를 낼 수 있다. 오븐 안에 넣어 내부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오븐온도계와 탐침처럼 생긴 온도계를 식재료에 찔러 넣으면 정확한 온도가 산출되는 조리용 온도계를 갖추고 있으면 좋다. 가격도 1만원 전후로 저렴하다.

신선한 재료를 써라

신선한 식재료를 써야 한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 고기나 해물 같은 주재료뿐 아니라 고춧가루, 소금, 후추 같은 양념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유효기간 만료가 임박한 후추와 이제 막 개봉한 후추가 같은 향을 낼 리 없다. 2년 묵은 냉동실의 고춧가루로는 어떤 요리 고수도 일급 낙지볶음을 만들기 힘들다. 가정에서는 가급적 소량제품을 구매해 쓰는 게 좋다.

하지만 신선함이 만고의 진리는 아니다. 채소는 너무 싱싱하면 화(火)요리 시 탱탱한 조직이 열을 튕겨내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채소도 숙성이 됩니다. 완전히 살아있을 때 어울리는 요리가 있고, 어느 정도 물러져야 좋은 것도 있어요.” 어윤권 셰프는 파프리카나 가지 구울 때를 예로 들었다. “너무 싱싱하면 열을 튕겨내면서 프라이팬 가장자리가 타기 시작하죠. 그때 아마추어들은 당황해서 불을 줄이는데, 그러면 채소에서 물이 나와 버리는 거죠.”

간은 두 번만 보는 것

4인분 기준인 레시피를 2인분으로 줄이거나 8인분으로 늘릴 때, 나누기 2를 하거나 곱하기 2를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인분수가 줄거나 늘어난다고 식재료도 그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간 맞추기는 미묘하고 섬세한 과정이라 4인분에 소금 10g이라고 8인분에 20g을 턱 하니 투하하는 것은 너무 용감한 행위다. “일단 절반 분량만 조리 중에 넣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요리가 끝난 후 추가하면서 간을 맞춥니다.” 어윤권 셰프는 “혀와 코는 굉장히 민감하고 빨리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간 보는 횟수가 두 번이 넘어가면 의미가 없어진다”며 “조리 중 수시로 소금을 가감하는 건 간을 제대로 못 맞추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고병욱 셰프는 “인분수의 증감에 따라 식재료 양을 조절할 때 주재료와 부재료를 나눠서 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산술적으로 정확히 증감한다고 해서 레시피 기준인 4인분과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죠. 갈비찜을 8인분으로 늘리려면 메인 재료는 정확히 두 배를 늘리고, 채소, 간장, 물엿, 설탕 등 부재료는 1.5배만 늘려도 됩니다. 소스나 국물은 정비례하지 않아요.”

레시피는 가이드라인이지 법칙이 아니다

레시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지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칙이 아니다. 결국 따라야 할 건 요리하는 사람 자신의 본능과 감. 바질 대신 파로 대체할 건지 쑥갓으로 대체할 건지는 요리하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너무 레시피에 의존하기보다는 자기 확신을 갖고 조율하세요. 강박관념 없이 편안하게 요리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어윤권 셰프는 “레시피를 만든 사람과 나 사이에는 사용하는 열기구와 냄비 등 하드웨어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레시피와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고병욱 셰프는 “좋은 요리는 레시피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 공식은 없다”고 말했다.

요리에도 초심자의 행운이란 게 있는 걸까. 처음 만들었을 땐 대장금도 울고 갈 맛이 나던 요리가 왜 똑같이 다시 하면 그 맛이 안 나는 걸까. “한번 해봤다고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렇죠. 조그만 차이가 큰 결과를 빚어내는 게 요리예요. 하나의 요리를 만드는 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이 3번이 되면 그 요리는 실패합니다.”(어윤권 셰프) 아직 끓지 않는 물에 넣은 국수, 못 참고 너무 자주 뒤집은 고기, 빨래 널고 왔더니 타기 시작해 급히 꺼버린 가스불…. 모든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요리는 그래서 규칙이 아니라 정성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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