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리치 스토리]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입력
2011.02.25 11:00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4) 이탈리아 총리가 질긴 정치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의 권력과 부를 양손에 거머쥔 입지전적 인물이자, 악명높은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하다.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이 지중해를 넘어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의 실망과 겹치면서, 퇴진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17년 정치 역정, 3선 총리

2008년 로마노 프로디의 좌파 연정이 붕괴한 뒤 베를루스코니는 3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1994년 정계 입문 이후 총리만 3번째다. 이번 임기 초반만 해도 성공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만 같았다. 과거 2차례 집권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잇단 스캔들로 흠집이 나면서, 집권 자유민중당을 2008년 베를루스코니와 함께 창당한 지안프랑코 피니 하원의장이 지난해 총리직 사퇴를 촉구하며 결별하는 등 정치적 동지들이 잇따라 등을 돌렸다.

17년전인 94년 미디어재벌 베를루스코니는 정계 데뷔와 동시에 파란을 일으켰다. 중도 우파노선의 전진이탈리아당(포르자이탈리아)를 창당해 선거판에 뛰어들기 무섭게 의회에 입성했고, 전후 최초로 우파 연정을 구성해 정권 교체도 이뤄냈다. 그는 이탈리아 정치판을 바꿀 ‘새로운 인물’로 여겨졌다. ‘자유, 가족, 전통, 기업, 이탈리아 전통, 기독교 전통, 그리고 약자에 대한 사랑’을 기치로 내건 베를루스코니는 부패로 물든 이탈리아의 구시대 정치를 청산할 수 있는 기대주였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첫 총리직에 불과 7개월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에 대해 부패연루 혐의가 제기되고 연정 내 균열이 생기면서 우파 연정이 붕괴됐기 때문.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프로디의 중도 좌파연정과 정권을 주고 받으면서, 2001~2006년에 이어 2008년 5월 3번째로 총리에 취임했다.

미디어 재벌

비교적 짧은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성공한 CEO형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큰 기여를 했다. 이탈리아 국민들이 그의 사업적 능력을 보고서, 국가를 경영할 능력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베를루스코니가 불순한 동기로 정치에 입문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당시 그의 사업은 거의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고 회사 경영 과정에서 뇌물 제공 등 각종 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힘이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 재벌이다. 이탈리아 10대 기업에 드는 피닌베스트그룹을 78년 설립했고 이를 통해 방송, 출판, 광고, 영화, 스포츠, 금융에 이르는 ‘부의 왕국’을 건설했다. 포브스는 지난해 그의 재산을 90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하며, 전세계 74번째 부자로 꼽았다. 포브스 평가대로라면 베를루스코니는 초콜릿 페레로로쉐로 유명한 제과업체 페레로의 미켈레 페레로(170억달러)일가와 레이밴 등의 세계적 브랜드를 보유한 안경업체 룩소티카의 창업주 레오나르도 델 베치오(105억달러)에 이어 이탈리아의 3번째 부자인 셈이다.

1936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은행원인 중산층 가정 출신. 밀라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에 다닐 때는 밴드를 결성해 나이트클럽 또는 크루즈 무대에서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60년대 고향 밀라노 동부지역에 아파트단지 ‘밀라노2’개발프로젝트로 성공의 발판을 닦았다. 여기에 케이블TV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단초가 돼 미디어산업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베를루스코니의 피닌베스트그룹에는 카날레5, 이탈리아1, 레테4 등 공중파TV 3개 채널을 보유한 민영방송사 메디아셋과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 몬다도리, 영화사 메두사필름과 펜타필름 등이 포함돼 있다.

스캔들 메이커

베를루스코니에게 있어서 스캔들이나 검찰 수사 등은 그다지 낯선 단어들은 아니다. 횡령, 세금포탈, 분식회계, 뇌물 제공 등 각종 부패 혐의로 워낙 자주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탓에 사법당국의 희생양이라고 종종 불만을 제기할 정도. 언제나 혐의를 부인했고, 또 교묘하게 혐의에서 빠져 나와 아직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사업가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의혹은 마피아 커넥션이다. 70~80년대 부동산개발과 방송 등의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조직 코사노스트라 등의 힘을 빌렸고, 정계에 입문한 90년대 초반까지도 정치적 후원을 대가로 마피아와 거래를 했다는 증언들이 몇몇 변절한 마피아 조직원들로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생명에 위협하는 건 유명한 바람기. 지난해말 이른바 ‘루비 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미성년자 성매매 및 독직(瀆職) 혐의로 베를루스코니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됐는데, 이번에는 검찰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불법 성매매를 한 17세 모로코출신 댄서가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을 때 총리 지위를 이용해 풀어줬다는 것이다.

두번째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여성 편력과 끊임 없이 터져 나오는 섹스 스캔들에 지쳐서였다. 유럽의회 선거에 정치 경력이 전무한 미녀 후보들을 내세우는가 하면, 10대 미성년 여성 및 콜걸과의 스캔들이 폭로되는 등 베를루스코니의 사생활은 연일 가십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숱한 부패 의혹과 스캔들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베를루스코니가 이번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17년 정치 역정의 고비를 맞고 있다.

다음주에는 구찌, 입생로랑 등으로 명품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명품그룹 피노프렝탕르두(PPR)의 프랑소와 앙리 피노 회장을 소개합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