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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소/서점과 술집사이 낭만의 발걸음(한국의 30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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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책방과 막걸리집서 사회과학서적을 논하며 독재를 성토/기차타고 떠난 대성리 MT땐 밤새 토론/‘사치스런’ 고팅에 창경궁 야사쿠라팅도한 사회학자는 대학의 분위기가 70년대의 낭만주의에서 80년대는 혁명주의로, 90년대엔 실용주의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분류는 지금의 30대를 특징지우는데도 무리가 없다. 시위에 참가하고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운동가요를 부르며 대학가 서점에서 이념의 자양분을 공급받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70년대말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대학가의 평균적인 모습이었다. 지금의 30대들이 추억하는 장소들도 이같은 대학생활과 맞닿아 있는 곳들이다.
컴퓨터학원장 나연수(35)씨는 학창시절을 회상하면 항상 고려대 앞 서점 「장백서원」을 떠올린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언제나 이 책방으로 가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세계철학사」 「자본주의이행논쟁」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 등 하도 많은 학생들이 읽고 읽어서 책갈피가 헤어지고 새까맣게 변한 책을, 나씨도 며칠동안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용돈을 모아 그 책을 산 뒤 자취방의 작은 책장에 꽂는 날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시위가 있는 날에는 책방이 즉석 토론장으로 바뀌곤했다. 거시적 정치전략론에서부터 미시적 투쟁전술론까지 학생들은 책을 읽다말고 뜨거운 논쟁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분에 책방은 종암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가장 자주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장백서원」을 비롯해 연세대 앞 「오늘의 책」,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성균관대 앞 「논장서적」 등 대부분의 사회과학서점들은 최근 대학을 점령한 실용주의와 향락주의의 물결 앞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장백서원」과 「오늘의 책」은 학생들의 구명운동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서울대 앞 「열린글방」과 「전야」, 고려대 앞 「향토」는 이미 문을 닫았다.
삼성맨 장지영(33)씨에게는 모교인 서울대 부근 녹두거리의 「일미집」과 「선비촌」이 추억의 장소. 파전 한 접시와 짬뽕국물 한 그릇을 시켜놓고 밤깊도록 막걸리잔을 기울이면서 선·후배들과 혀꼬부라진 소리로 독재를 성토했다. 그러다가 한사람이 「친구」 「선구자」 「노동해방가」 등 운동가요를 부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성한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는 상을 젓가락으로 쾅쾅 내리치며 노래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모두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술값 몇 천원이 안돼 학생증을 맡겨놓기 일쑤였다. 그래도 주인 아주머니는 항상 웃는 낯으로 『살펴가라』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일미집」도, 「선비촌」도 사라진 지금 장씨는 모교 앞에서 젊은 시절을 곱씹을 장소를 찾지못해 현재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막걸리집인 고려대 앞 「호질」을 찾아간다.
수련회(MT)의 명소인 대성리나 새터유원지를 기억하는 30대도 많다. 대학강사 김본수(36)씨는 『요즘에는 MT가 콘도에서 좋은 음식 차려놓고 춤추며 노는 괴상한 행사로 변질됐지만 당시에는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성리나 새터에 도착, 좁은 민박집 방 한 칸에 들어가 쓴 소주를 마시며 밤새도록 토론하곤 했다』고 추억한다. 또 큰 솥에 김치 약간과 꽁치 통조림 한 통를 털어넣어 만든 희멀건 찌개를 안주삼아 마시는 소주 맛도 일품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의 가장 사치스러운 행사는 「고팅」이었다. 이름 그대로 고고장 또는 디스코장에서 미팅을 하는 것이다. 무교동 「코파카바나」, 강남 「스튜디오88」 「월드 팝스」, 종로 「오자오자」 등이 「고팅」의 명소로 꼽혔다. 대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개강 직후에 「개빙고(개강을 빙자한 고팅)」, 중간고사 후에는 「중빙고」, 종강이 되면 「종빙고」라고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고팅」을 했다.
밤벚꽃놀이가 벌어지는 창경궁도 추억의 장소. 낭만적인 분위기를 활용해 즉석 데이트 신청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단대나 과 단위의 대규모 미팅도 자주 열렸다. 「야사쿠라팅」이라고 불렸던 창경궁의 대규모 미팅에서 여러 쌍이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벚꽃이 뽑혀진 85년 이후 「야사쿠라팅」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이은호 기자>이은호>
◎“데이트하기도 부끄러웠어요”/30대 부부의 연애시절 미술관·찻집 등 ‘애용’
『우리가 연애할 때만 해도 남들에게 숨기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일부러 칸막이 있는 카페나 한적한 곳만 찾아 다녔습니다』
4년여의 연애끝에 90년 결혼한 이창우(36·계원조형예술대 교수) 김지희(32·일러스트레이터)씨 부부의 연애시절 데이트 장소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인적이 드물어 발견되기 어려운 곳이 이씨 부부가 가장 즐겨 찾았던 장소였다.
『요즘은 연애하면 내놓고 하잖아요. 그때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이씨는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씨 부부가 주로 데이트하던 곳은 구기터널 입구의 「서울미술관」, 인사동 화랑가와 찻집, 삼청공원, 모교인 홍대앞 카페 「우리마당」, 그리고 신촌역에서 교외선으로 1시간 남짓인 백마역 등이다.
이 가운데 이씨 부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서울미술관」. 평일이면 관람객들이 거의 없어 1, 2층 모두가 둘만의 공간이었다. 커피 한잔 뽑아들고 그림 구경하다 지루해지면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숨바꼭질도 했다. 연애하기에는 삼청공원도 괜찮았다. 한적하기도 했지만 구석구석 은밀한 곳이 많아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만날 때면 학교앞 주점이나 디스코장을 찾았다. 지금은 없어진 홍대앞 주점 「계단집」에서 라면을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강남이나 명동의 디스코장을 찾아 땀에 흠뻑 젖기도 했다.
이씨 부부는 즐겨가던 장소가 대부분 사라진지 오래거나 있더라도 예전의 모습과는 딴판이어서 무척 아쉽다.<유병률 기자>유병률>
◎교문의 추억/자유·정의지킨 ‘전선’/경찰과 대치 항상 최루가스 범벅
오랜만에 대학 은사를 찾은 L그룹 강태욱(34·성균관대 졸) 과장은 교문을 통과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밝은 색상의 승용차를 몰고 출입하는 후배들, 교문앞 거리를 메운 화려한 톤의 카페와 건물들. 왠지 자신의 감색 양복과 단종된 중고차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강과장은 갑자기 30대라는 세대가 사회와 문화의 흐름에서 이탈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변하지 않은 것은 그때나 이제나 여전히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교문뿐이라는 느낌과 함께.
30대에게 교문은 사회와 대학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출세라는 가치기준이 지배하던 바깥사회로부터 정의라는 또 다른 가치기준을 가진 대학을 지켜주던 굳건한 성곽이었다. 그래서 모순의 세상인 교문밖과 밤늦도록 「5월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교정을 가르는 교문은 항상 매운 최루가스가 가시질 않았다.
『화염병에 그을리고 최루탄에 하얗게 탈색한 교문은 양심의 상징이었죠』
89년 북한을 다녀온 임수경(31·한국외국어대 졸)씨의 교문에 대한 추억이다.
이같이 교문이 정의를 수호하는 전선 역할을 하게 된 것은 84년 대학자율화가 이뤄지고 캠퍼스에 상주하던 경찰들이 물러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시위대가 교문까지 진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87년 5, 6월 이른바 교문싸움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과학생회에서 일했던 허영일(32·고려대 졸)씨는 『4·13호헌조치가 발표되면서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들이 예비군복을 입고 대거 교문시위에 참가했다. 교문에서 10여시간을 경찰들과 싸운 적도 있다』며 회고했다.
물론 교문이 30대들에게 이런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수련회(MT)를 떠나고 미팅을 약속하던 장소로서의 교문도 떠오르고,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고되게 공부한 뒤 밤늦게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느꼈던 뿌듯함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교문도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의 생각도 변하고 교문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87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홍순(35)씨는 『80년대만해도 학교안은 자유와 민주, 학교밖은 갈등과 권위로 여겨졌다. 그런데 요즘 한번씩 동창모임이 있어 학교 교문으로 들어설 때면 당시에는 왜 그렇게 대립으로 일관했던가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교문의 안과 밖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 30대들의 생각이다. 박태봉(35·연세대 졸)씨는 『물론 80년대처럼 전선의 개념은 아닐지라도 사회와는 구분되는 순수와 희망, 진리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문화는 교문 안쪽의 공간에서 끝까지 수호돼야할 가치가 아닐까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유병률 기자>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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