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박 있던 학생이 탈 구조 헬기, 청장들이 타고 가버려

입력
2019.10.31 11:43
수정
2019.10.31 19: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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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중간조사 발표… 구조·수색 지휘 엉망으로 드러나

헬기 탈 기회 3번 놓치고 배 이송… 5시간 만에 병원 도착 결국 사망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 등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 등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와 수색을 위한 헬기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속하게 구조자들을 이송해야 할 헬기는 대부분 팽목항에서 대기했고, 현장에 투입된 헬기는 해양경찰 간부들이 이용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31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의 특조위 사무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수색 적정성에 대한 중간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국가는 최소한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았다”며 참사 당일 구조ㆍ수색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세 번째 희생자는 발견부터 병원 도착 시점까지 구조ㆍ수색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세 번째 희생자는 두 번째 희생자가 오전 11시 40분에 발견되고 5시간이 지난 오후 5시 24분쯤 확인됐다. 해상사고의 경우 표류 가능한 영역이 넓어 헬기 수색이 중요한데, 이날 오후 2시 40분 영상자료에는 현장에서 수색 중인 헬기가 없었다는 게 특조위의 조사 결과다. 헬기 다수가 팽목항에서 대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일 목포해경 상황보고서에는 헬기 11대와 항공기 17대가 투입됐다고 적혀 있다.

환자 이송에 사용된 건 헬기가 아니라 선박이었고 이송 과정도 더뎠다. 세 번째 희생자는 발견 이후 4시간 41분이 지난 오후 10시 5분쯤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후 10시 10분쯤 사망했다. 헬기를 탔다면 20여분 만에 도착했을 거리인데도 배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가는 바람에 이송이 지연됐다. 세 번째 희생자는 당일 오후 5시 30분부터 오후 6시 40분까지 해경 3009함에 머물렀다. 실무자들이 헬기 이송을 준비하는 사이 두 대의 헬기가 3009함에 내렸으나 김수현 당시 서해해양경찰청장과 김석균 전 해경청장이 타고 가버려 이송에 쓰이지 못했다. 특조위는 세 번째 희생자를 이송하기 위해 추가로 소방헬기 1대도 착함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혔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적정성 조사내용 중간발표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한 세월호 유가족이 자리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적정성 조사내용 중간발표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한 세월호 유가족이 자리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 희생자가 이미 사망해 생명 구조 상황은 아니었다’는 해경의 반론에 대해 특조위는 “오후 5시 35분쯤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로부터 병원 이송을 지시 받은 상태였다”며 “오후 6시 35분쯤 ‘익수자 P정으로 가라’는 함내 방송이 나올 당시 의사의 사망판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세 번째 희생자의 사체검안서상 공식 사망시간도 당일 오후 10시 10분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당시 ‘바이털 사인’ 모니터상 세 번째 희생자의 산소포화도 수치는 69%로 확인됐다"며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통해 확인하니 ‘사망으로 판정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참사 당일 구조ㆍ수색에 대해 추가로 조사해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면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장완익 특조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국가는 최소한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304명이 희생됐다”며 “당시 구조와 수색활동 문제를 되짚는 것은 지금도 되풀이되는 사회재난 현장에서 국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사내용 중간발표장에는 노란색 외투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 20여 명도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당일 더딘 수색활동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시청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부 유가족은 “몇 분만 빨랐더라도 아이들이 살수 있었다. 전면 재수사를 하라”며 울부짖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특조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당시 해경 책임자 등을 추가로 고발할 방침이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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