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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의 상징이 된 대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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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고생이 많다. 어느새 너는 '물가 관리 실패'의 상징이 됐고 '정권 심판'의 선봉에 섰구나. 너를 투표소에 들여보내지 않은 것도 일견 이해는 된다. 이번 총선의 맥락 속, 넌 더 이상 중립적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굳이 너와 함께 투표소에 가겠다는 마음들에 내 마음도 기울긴 해. 물가 못 잡았다고 질책하려는 건 아니야. 제어하기 어려운 영역이니까.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고, 그 와중에 전쟁이 나서 유가가 치솟았고, 농산물 작황과 직결된 날씨는 기후위기 때문에 더욱 종잡기 어렵게 됐잖아. 금리를 올려서 돈이 덜 돌게, 그래서 물가가 덜 오르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더라.
네 가격,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대통령 말은 문제 있다고 생각해. 양파, 마늘, 당근, 애호박… 냉장고 필수 채소 서너 종만 사도 1만 원 넘긴 지 오래인데. 그의 말은 민생과 괴리가 컸지. 민심에 무심(無心)했어. 그런데 그의 문제만은 아닐 거야. 한국은행 고위 공직자도 퇴임 간담회에서 네 가격 모른다고 하더라. "물가 안정 책무를 비교적 잘 수행했다"고만 하지 말고, '생활물가 오름세는 유감이다.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사전투표가 있던 지난 주말, 우리 마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널 두고 약간의 소동이 있었어. 대파 투표장 반입 금지 조치를 두고 '대파 인형을 대신 들고 가겠다'는 등 사람들이 농을 주고 받는데,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폭등했던 게 더 큰 문제 아니냐"며 누군가 어깃장을 놨거든. 이후 감정적인 텍스트들이 오갔고 많은 마음들이 상해 버렸어.
선거철엔 크고 작은 갈등들이 허다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어. 이웃끼리 얼굴 붉히며 싸울 일인가 싶었거든. 대파 헬멧, 대파 팻말을 들고 거리 유세하는 정치인들이 떠올랐어. 어떤 대안이 있길래 너를 앞세우며 호기롭게 "정권 심판"을 외치는 걸까. 제1 야당 홈페이지에서 총선 물가 정책을 찾아 읽었어. '기후물가 쿠폰제'는 그들이 "혈세 붓는다"고 비판했던 정부의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어. '농산물 계약재배'는 정부도 '금(金)사과' 대책으로 내놨던 것이었어.
정치란 무엇일까. '대파'와 '디올백', 이에 대항하는 '여배우 사진'이라는 정치 상징들을 내세우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이 정치일까. 결국 똑같은 얘기인데 '네 생각이라서 틀렸다'고 거부하는 게 정치일까.
답을 찾고자 그날 정치 커뮤니케이션 논문 몇 편 훑어봤어.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2016년에 쓴 리뷰 '왜 정치는 상징조작의 예술인가? : 머리 에덜먼'에 나오는 '적대적 공생'이라는 개념이 눈에 띄었어. 상대방에 대한 반감을 심화시키면서 극우와 극좌가 의도치 않게 서로 돕고 사는 관계가 형성되는 게 적대적 공생이래.
개념 설명 뒤 강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어. "정책이나 이슈 중심의 세력은 물론 온건파와 중간파는 그런 적대적 공생의 와중에서 설 자리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너를 있는 그대로의 대파로 대하면서 가격 부담 완화 방안을 논하는 민생 담론은 정치의 영역에서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마음이 더 혼란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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