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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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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400년이 걸리는 거리를 거슬러 오고 있는 외계인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과학자'였다. 외계인들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인류 과학의 진보를 두려워했다. "인간은 수렵 채집에서 농경 사회로 옮겨가는 데 9만 년, 산업 발전에 1만 년, 원자력 기술 개발에 200년, 컴퓨터와 정보화 시대 진입에 5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400년 뒤 자신들의 침략을 저지할 것을 우려한 외계 존재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방해하거나 아예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넷플릭스 공상과학(SF) 드라마 '삼체'의 초반 줄거리다. 인류를 성공적으로 정복하기 위해, 과학은 필수적으로 거세돼야 하는 문명의 요체인 셈이다.
인류는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하지만, 이를 해결할 묘수를 짜내는 것도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닌 과학자였다. 옥스퍼드대 출신 물리학자로 그려지는 진 청이 핵폭탄의 힘을 이용해 삼체 우주선을 정찰할 탐사선을 보내는 '계단 프로젝트'를 설계한다. 진의 친구이자 입자가속기 연구원인 사울 듀랜드는 유엔(UN)에 의해 외계인과 맞서 싸울 전략을 짜는 '면벽자'(Wallfacer)로 선택받는다.
허구의 이야기인 데다 SF라는 장르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삼체의 과학자들은 최근 과학 영역을 취재해 온 기자가 접한 국내 과학자들의 삶과 매우 크게 괴리돼 있다. 지난 몇 달간 한국에서 과학자들은, 경외의 대상이거나 난세의 영웅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오랜 세월 정부의 나눠주기식, 퍼주기식 예산에 의지해온 무능한 집단으로 비쳤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보는 시선은 요즘 또 어떤가. 대입 성적이 밀려 의대 입성에 실패, 차선책으로 이공계를 택한 자들로 치부되기 일쑤다. 의대 정원이 2,000명 늘면, 의대 쏠림 현상과 이공계 공동화가 심화돼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흔들릴 것이란 걱정까지 나온다.
생각해 보면 꼭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인류를 구한다는 과격한 설정이 아니더라도, 우리 대중문화 속에서 과학자의 삶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기자의 기억 속에 가장 유명한 과학 드라마는 1999년 방영된 '카이스트' 정도다. 반면 그 사이 인기를 끌었던 의학 드라마나 의사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드라마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안에서 의사들의 모습은 대체로 이렇게 그려진다. 생명을 구하는 전문가이면서 고소득과 사회적 존경을 함께 누리는, 때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처럼 한없이 선하기까지 한. 당장의 대입 성적으로 직업과 여생을 결정 지을 수 있다면, 이렇게나 매력적인 의사를 굳이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다. 어떤 미래가 그려질지 희미한 삶 대신 말이다.
의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꼭 SF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대중들이 과학자의 삶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기회가 더 늘어난다면 어떨까. 분명 그들의 삶에도 거듭된 실패, 심기일전, 치열한 경쟁, 빛나는 성공과 눈물 어린 감동이 존재할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한 우물 연구 끝에 수백억 원 가치의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는 한 대학교수의 성공 신화 또는 국산 기술로 개발한 달 탐사선을 우주로 보내 인류 번영에 기여한다는 가슴 벅찬 이야기. 누군가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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