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에게 프로야구 중계 맡겨라

입력
2024.03.0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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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 tvN 제공

나영석 PD. tvN 제공

프로야구 개막(23일)을 보름 남짓 앞둔 팬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떨치고 12년 만에 한화 이글스로 돌아온 류현진 선수의 활약에 대한 설렘, 투수가 18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하는 '피치클락', '로봇심판(ABS)'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달라지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에 어찌 적응하나 하는 걱정까지.

지난해까지는 스마트폰이나 개인용컴퓨터(PC) 등으로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와 SKT KT LG유플러스 등 이동 통신 3개사가 제공하는 스포츠 채널 생중계를 손쉽게 보거나 아프리카TV에서 특정팀을 응원하는 BJ가 스포츠 채널의 중계를 활용해 진행하는 편파 중계를 무료로 즐겼다.

그러나 올해는 두 가지가 달라진다. CJ ENM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TVING)에서만 유료(4월까지는 무료)로 봐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지닌 프로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야구계는 물론 방송업계와 통신업계 등 곳곳에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중계도 돈을 내고 보는 상품이 된다. 최소 한 달에 5,500원을 지불하고 '프로야구 중계'를 구매하는 셈.

그동안 야구팬들은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아 결정적 장면을 놓쳐도, 카메라가 엉뚱한 곳을 잡아도, 해설가와 아나운서가 잘못된 내용을 전달해도 아쉬워하다가 '무료니까~'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큰 목소리로 원하는 걸 외칠 수 있고 작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눈물 쏙 나게 쓴소리를 할 것이다.

공은 CJ ENM에 넘어갔다. 이 회사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기존 컨소시엄이 냈던 연 22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연 450억 원을 주는 조건으로 3년 동안 유무선 독점 중계 사업권을 땄다.

2018년 CJ오쇼핑과 CJ E&M이 합병해 출범한 이 회사는 지난해 처음 적자를 봤다. 때문에 KBO와 1,350억 원짜리 대형 계약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적 악화에도 CJ ENM은 연간 800만 명이 야구장을 찾는 상황을 활용해 티빙 구독자 수도 늘리고 매출도 키워보겠다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런 희망을 현실로 만들려면 CJ ENM은 프로야구팬들이 내는 돈 값을 해야 한다. 만만치 않을 것이다. 1982년 시작한 프로야구는 올해로 43년째를 맞는다. 그만큼 팬들의 눈높이와 취향은 까다롭다.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스포츠 채널들은 수십 년 중계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콘텐츠 제작 회사라 해도 프로야구 중계는 '초짜'나 다름없다. 당장은 일주일에 한 경기만 자체 제작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팬들은 냉정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게다가 최근 이 회사가 중계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다른 스포츠 콘텐츠의 수준에 팬들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결국 고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 팬들에게 프로야구는 점수 내기 경쟁을 넘어 울고 웃는 서너 시간짜리 주말 예능이자 일일 드라마다. CJ ENM 산하 레이블 에그이즈커밍의 나영석·신원호 PD에게 프로야구 중계를 맡기는 파격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박상준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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