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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민이 내는 경비원 퇴직금, 정작 경비원들은 못받는다?

입력
2023.09.23 12:00
수정
2023.09.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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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56>3개월 계약 만연한 아파트 경비원
1년 채우기 전 해고, 퇴직금 지급 안 해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 한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서울 강남구 S아파트 홍성준 경비원이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서울 강남구 S아파트 홍성준 경비원이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1년 못 채우고 퇴직하는 경비원들은 퇴직금을 못 받잖아요. 그 퇴직금은 그냥 용역업체가 가져가요.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들에게 줘야 하는) 매월 퇴직금, 연월차 수당을 다 내는데··· (한꺼번에 내면) 목돈이 될까 봐.”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S아파트에서 경비원 홍성준(71)씨를 만났습니다. 관리소장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 사망한 그의 동료 경비원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는데, 경비원들이 처한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용역업체가 챙기는 수수료 모른다

“월급은 220만 원 받아요. 세금 떼고 실수령액은 207만 원이에요. 늘 최저임금을 받지요. 100원도 더 안 줘요. 아파트 주민들이 용역업체에 우리 인건비로 얼마를 주는지는 모르죠. 수수료가 얼마인지 몰라요. 우리를 교육시킨다는 명목하에 1인당 몇 만 원씩도 떼어가요.”

5년간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경비 노동자로 살아온 홍씨는 자신의 임금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경비원들은 기본적으로 용역업체가 ‘사람 장사’를 하는 대가로 이윤과 운영비 등으로 중간에서 얼마를 챙기는지 알지 못합니다. 현행법상 업체가 공개할 의무도 없죠.

서울 강남구 S아파트 경비초소에서 인터뷰에 응한 홍성준 경비원. 윤서영 인턴기자

서울 강남구 S아파트 경비초소에서 인터뷰에 응한 홍성준 경비원. 윤서영 인턴기자


3개월 계약 만연, 퇴직금 쌓아놓고 안줘

원래 1년 계약이 대부분이었던 경비원들은 몇 년 사이 급격히 3개월 계약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2021년 부산노동권익센터가 부산지역 경비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3개월 이하 초단기 계약 비율이 71.8%에 달했죠

현행법상 1년 이상 일하면 퇴직금을 줘야 합니다. 그러니 3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하면 쉽게 자를 수 있고, 퇴직금을 안줘도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지요. 홍씨는 “악덕 기업은 한 달 남겨놓고 트집 잡아서 짤라요. 퇴직금 안 줄려고요”라고 현실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6년 동안 6군데서 쫓겨났다”는 대구 아파트 경비원 서정대(70)씨의 사연 등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도지사가 제정하는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서 퇴직적립금, 연차수당, 4대 보험 등은 용역업체가 지급사유를 입증해야 지급하도록 돼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서울시·경기도 등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없는 지역들도 있죠. 기준이 있는 곳이라도 현장에선 일단 주민들에게 받아놓고 제대로 감시가 안되면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주지 않고 남은 퇴직적립금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거나 관리비에서 차감하는 착실한 아파트들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죠. 또한 퇴직적립금이 다른 관리비로 쓰였다고 해도, 받지 못한 경비원 입장에서는 부당한 착취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3개월 계약이 중간착취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노예계약이에요. 통솔하기 좋고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3개월 계약 때문에 못하잖아요.” 홍씨의 설명입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조사 자료

부산노동권익센터 조사 자료


단기계약 방치···고용보험에도 피해

초단기 계약에 불안한 경비원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리 없고, 그 피해는 알게 모르게 주민들이 받게 되지요. 또한 퇴직금을 받지 못할 정도로 단기간 일하다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실업급여 신청으로 몰리면서, 고용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법’ 중에는 용역업체가 근로자 임금 몫으로 원청에서 받은 비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된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S아파트의 경비 초소. 윤서영 인턴기자

서울 강남구 S아파트의 경비 초소. 윤서영 인턴기자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상시 인력의 ‘3개월 쪼개기’ 계약을 제한하는 법안도 별도로 필요해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합니다. 기본적인 임금 중간착취 방지법조차 그다지 관심이 없는 국회이니, 이런 입법을 기대하기 쉽지 않지요.

그나마 경기도가 지난 8월 경비 노동자가 아파트 용역업체 등과 용역계약서를 작성할 때 ‘근로계약을 1년 이상의 기간으로 체결하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시행했습니다. 권고사항이지만 의미가 상당합니다. 경기도 아파트 경비원들도 6개월 이하 단기 근로계약 비중이 49.9%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기도는 지난 6월에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관리주체는 경비·청소 등 각종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용역비 청구 시 제출한 임금내역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임금 중간착취 방지를 위한 것이죠.

경기도의 이런 움직임이 국회, 정부,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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