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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버스 터미널... 지방소멸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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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봐, 저렇게 허리가 구부정하고 다리도 불편한데 어디 차 끌고 다니겠어? 여기 오는 사람들 다 그래.”
마을에서 나름 ‘젊은 피’에 속하는 65세 노인이 걸음걸이가 유난히 '느릿느릿한'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노인은 이날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1시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렸다.
지난 14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원평버스터미널. 지역 노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교통 허브'이지만 터미널은 황폐했다. 음식점과 잡화상 등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매표소는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어둑어둑한 대합실 구석엔 먼지 쌓인 소파와 폐업 점포에서 버리고 간 주방시설이 나뒹굴었다.
민간이 운영하던 터미널은 2년 전 폐업했다. 그 후 김제시에서 부지만 임차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잠시 앉아 쉬는 쉼터 역할만 간신히 하는 정도다. 이렇게라도 터미널을 유지하는 이유는 버스가 이곳에서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가 만난 첫 승객 박용철(86)씨는 “여기는 (이동수단이) 버스 아니면 택시인데 (택시 요금은) 버스보다 10배는 비싸지 않냐”는 말로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리가 불편한 박씨는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자가용이 있어도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것은 '언감생심'. 이날 터미널에서 만난 승객들은 하나같이 자가용이 없거나 있어도 운전을 못하는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원평터미널처럼 폐업 후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고 있거나 통폐합된 버스 터미널은 지난 3년간 18곳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여객 수요가 반토막 난 것이 결정타였지만 팬데믹 수년 전부터 지방 교통은 꾸준히 쇠락하고 있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해 발간한 2021 버스통계편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기준 일부를 제외한 지방의 시외버스 수송인원은 10년 전인 2009년 대비 20%포인트 넘게 줄었다. 강원(22%), 전북(24%), 전남(27%), 경북(31%) 순으로 많이 줄었고, 세종시 출범으로 도리어 수송인원이 증가한 충남을 제외하면 경남(8%)과 충북(12%)의 감소폭이 가장 적었다. 같은 기간 경기 시외버스 수송인원 감소율은 4%에 불과했다.
수송인원 감소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운송업체들은 감차를 단행했고, 터미널 사업자들은 시설 관리 비용을 줄여야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이 다시 승객들의 불편으로 이어지면서 지역 교통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이날 전북 남원시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 오후 4시께 서류철을 든 남성이 급하게 터미널로 뛰어 들어왔지만 승차권은 구하지 못했다. 원래 오후 8시까지 운행하던 전주행 직행버스가 이미 1시간 전에 막차까지 끝난 탓이다. 터미널 운영자 김희순(66)씨는 “(승객이) 감차 전 시간표를 보고 왔다. 차편이 이리 줄었으니 사람들이 불편해서 버스를 타겠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때 일일 이용객이 수백 명에 달하던 인월터미널은 현재 하루 이용객이 60명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이 없으니 버스 회사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시설과 차량 편성이 열악해지기 마련이다. 열악해진 교통 여건 때문에 이용객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수익성을 잃고 폐업한 버스 터미널을 매입해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계약을 맺는다. 전북 정읍시 신태인공용버스터미널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준공영제를 본격 도입하는 수도권과 달리 민간 운영이 대세인 지방 버스 체계 특성상 터미널만 공영화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 소멸이 진행될수록 지방 운송업의 수익성은 계속해서 악화될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 버스 터미널은 지방 소멸을 앞당기는 교통 소멸의 첫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띈 어떤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광경, '이한호의 시사잡경'이 생각할 거리를 담은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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