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국정 청사진이 궁금하다

입력
2022.04.13 18:00
26면

대선에서 국정 철학과 비전 제시 못해
역대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참고 삼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로드맵 제시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초대 내각 장관 후보자 8인을 발표한 뒤 서울 종로구 통의동 20대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초대 내각 장관 후보자 8인을 발표한 뒤 서울 종로구 통의동 20대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내각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정무장관 부활 소식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슬림화에 맞춰 정무수석을 폐지하는 대신 대야 소통 창구로서 차관급 수석비서관보다 급이 높은 장관급 직제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정무장관은 DJ정부에서 폐지했다가 MB정부 때 재가동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 유독 MB시절 인물들이 많아 안 그래도 MB정부 2.0을 우려하는 마당에 정부 직제마저 MB를 따라간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거 정부의 경험과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마냥 나무랄 일은 아니다. 도리어 정치경험이 부족한 당선인이 여소야대 정국을 슬기롭게 돌파하는 데 정무장관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치 경험 부족은 윤 당선인의 최대 약점인데 대선 기간에 특히 도드라졌다. ‘쩍벌’과 ‘도리도리’의 태도는 물론 연이은 말실수까지 언행 자체가 정치 지도자의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청와대 반대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가로막히자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면서 통의동 임시 집무실을 고집하는 등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정치문법을 무시한 행보는 이어졌다.

평생을 검사로 살면서 정치 경험 기회가 없었던 윤 당선인을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선인은 국정운영의 비전조차 분명히 밝힌 적이 없다. 대선 기간 내내 국정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당선인은 ‘닥치고 정권교체’에 올인했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대선공약을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지향점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외하면 행복경제시대, 공정과 상식의 회복, 당당한 외교, 모두가 안전한 나라,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 등 색깔과 특색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진부한 구호 일색이다.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조각(組閣)의 면면을 보더라도 향후 5년 어떤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방향성을 짐작하기 어렵다.

역대 정부는 나름대로 철학과 비전이 뚜렷한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처럼 정부 명칭에서부터 국가경영 방침을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군사정부의 잔재라는 한계가 분명한 노태우 정부조차 시대 변화를 재빠르게 간파하고 북방외교와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이라는 대외정책의 성과를 일궈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탄핵의 혼란상을 극복하는 시대적 과제 외에 참여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받아 안정적 남북관계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정부 또한 시대적 상황과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반영한 국가운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가 국정운영 청사진을 마련하느라 부산한데 ‘ABM(Anything But Moon, 문재인 정부 뒤집기)’ 수준에 그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들다. 탈원전 정책 폐기나 부동산 정책 정상화, 북한인권재단 설립 등의 과제는 문재인 정부를 극복하는 액션플랜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국정운영 청사진이라면 양극화에 발목 잡힌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현실과 격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 속 한반도 안보 불안 등의 시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통찰을 반영해야 한다.

공정과 정의의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역점을 두라는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검사 출신의 당선인 이력에 비춰보면 국정운영 방향으로 삼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대통령이 정통한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당선인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하는 대결적 인사 방식이 도리어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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