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위'가 먼저다

입력
2021.08.30 00:00
26면

대선후보들은 견고한 의지 피력해야
지지층 확보 위한 선심공약에 가려져선 안돼
보수·진보 이분법적 진영논리는 허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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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세력의 전광석화 수준의 카불 점령과 아프간 지배는 트럼프 행정부의 철군협약과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결정 및 준비태세의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철수 공항에서의 아비규환 테러현장을 지켜보는 세계 시민들은 베트남 사이공에서의 미국 철수 당시 혼돈을 능가하는 참상에 경악하고 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던 6·25전쟁 때 미주리호 피란민 흥남철수 작전의 절박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아프간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강대국의 비호나 한때의 동맹관계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우려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치열한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4강으로 둘러싸여 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엄중한 대외여건에서 명확한 좌표를 설정하고 국가보위 역량을 견고히 하려는 의지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후보자들이 그렇게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고지도자의 책무는 크게 대외 부문과 국내 부문으로 나누어진다. 국내 부문의 정책방향과 선택은 시대정신에 따라 다양한 의견의 투입과 여야 조율을 통해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지만, '국가안위'에 관한 대통령의 책무는 국내 부문과 달리 이념적 선호, 정파적 입장과 계산이 개입할 여지가 존재해서는 안 될 무한책임의 영역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선출과정에서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유권자의 주목을 끄는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러한 득표활동 이전에 후보자가 '국가안위'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이를 뒷받침할 국가역량 향상의 밑그림을 제시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선후보자로서 가장 손꼽아야 할 자질은 단연코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관한 냉철한 인식과 준비된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후보자들은 주택가격 반등을 우려하는 다수 국민들의 불안, 취업난에 전전긍긍하는 청년유권자, 생업을 지탱하느라 하루하루가 고달픈 서민들의 고통 속에 가려진 '국가안위'의 문제를 최우선적인 과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정치권과 행정부를 인도하는 선도적 역할을 자임할 때 진정한 국가지도자의 길에 다가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38년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가 히틀러와 '체코 수데텐지역 양여'와 관련, 뮌헨협정을 체결하고, "이제 유럽의 평화를 찾았다"고 환호하는 시점에, 히틀러의 야욕을 예견하고 경고한 윈스턴 처칠이 2년 후 총리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냉철한 지도력이 국가위기를 넘기는 핵심요소의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대선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도입, 명실상부한 공정과 법치의 실현, 서민생활의 안정 등의 이슈가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경쟁력 있는 유력한 후보라면 이러한 이슈 못지않게 미·중 갈등의 심화와 복합대전환의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한·미동맹의 진화를 모색하면서, 이를 토대로 실사구시 관점에서 중국·일본·러시아와 상호이익의 틀을 어떻게 균형 있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신중하되 명확한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이런 이슈에 관한 후보자들의 토론이 별도의 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제안한다.

국가안위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없고, 보수·진보가 구별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진영대결이 지속되고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국가안위의 중요성을 냉전시대의 수구적 접근으로 폄훼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존립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연천 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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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천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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