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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주류가 된 진보, 파탄 난 민주화 서사….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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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친 살해의 드라마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두 개의 큰 이야기로 움직여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서사. 이 두 서사는 동시에 두 세대를 대표한다. 산업화를 이끈 할아버지 세대와 민주화를 이룬 아버지 세대. 이번 총선을 통해 사회의 주류는 전자에서 후자로 교체됐다. 하지만 이것이 산업화에 대한 민주화 서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86세대가 새로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민주화 서사 역시 해방서사로서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보수의 이야기
과거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큰 이야기는 박정희 정권이 쓴 반공과 ‘산업화 서사’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고, 북한은 이를 토대로 적화통일을 추구했다. 끝없는 남침의 위협 속에서 시민들은 반공전사와 산업전사로서 ‘싸우면서 일하는 보람’에 살았다. 전쟁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시절 정권은 국민의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것만으로 쉽게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화는 눈부신 업적이었다. 농경사회였던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산업사회로 변모한다. 고도성장은 독재체제에 대한 시민의 염증을 성공적으로 무마했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 사이에 이 국가발전전략에 대한 암묵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 기계와 결합한 산업생산력은 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놀라움은 지도자에 대한 종교적 외경에 가까운 숭배로 이어졌다.
박정희 모델은 1979년 그의 시해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하지만 박정희식 고도성장의 신화는 3저(저유가·저금리·저원화가치) 호황에 힘입어 그의 사후에도 지속되다가, 결국 1997년 국가부도 사태와 함께 막을 내린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이를 대신할 대안 서사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고, 아직도 실패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식 고도성장의 서사를 재활용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치방식마저 유신시대로 되돌렸다가 탄핵을 당하고 만다.
◇진보의 이야기
산업화세대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다. 배우지 못한 아버지들이 힘들게 가르쳐놨더니, 대학에 간 자식들은 반공전사와 산업전사가 되기를 거부하고 민주투사와 통일일꾼이 되려 했다. 자식 세대의 투쟁 이야기 역시 아버지들의 전쟁 이야기 못지않게 절절했다. 이들의 부친살해는 1987년 시민항쟁으로 시작해 30년 만인 2017년 대통령 탄핵으로 완료됐다. 이번 총선은 그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화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만든 터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임수경의 방북은 몇 년 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선거 때마다 ‘북풍’이 불까 걱정하는 것은 민주화 세력이었으나, 요즘은 외려 보수진영에서 ‘북풍’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산업화세대의 업적은 역설적으로 반공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체제대결에서 남한의 압도적 승리로 북한이 과거만큼 위협적 존재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 공동체의 기억도 바뀌었다. 부모에게 전쟁 얘기를 듣고 자란 자식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반독재 무용담을 들려준다.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반공 영화를 보고 자랐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변호인’ ‘1987’ ‘택시운전사’를 보며 자랐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해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도 북한의 만행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을 강조한다. 그 사이에 할아버지 세대는 ‘국제시장’을 내놨을 뿐이다.
◇진보의 종언
사실 민주화세대는 그 동안 꾸준히 보수화해 왔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급속히 체제에 포섭돼 아파트를 가진 중산층으로 변모한다. 산업화세대는 이들을 데모만 하느라 ‘직접 돈을 벌어보지 못한 세대’라 매도하곤 했다. 하지만 새로이 도래한 정보사회에서는 80년대에 운동을 하거나, 그 분위기에 동조했던 이들이 외려 생산의 중추가 됐다. 2000년대에 벤처나 인터넷 기업들을 세운 것도 이들이다.
생산에서만이 아니다. 소비에서도 이들은 구매력이 가장 강한 계층이다. 그 구매력에 힘입어 광고를 먹고 사는 언론매체에까지 자신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과거의 산업화세대는 노령화로 이미 구매력을 잃은 데다가, 그 수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의 선거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경계가 40대 유권자층에서 형성되곤 했다. 어느새 그 경계는 50대로 올라갔고, 머잖아 60대로 진입할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나이가 들어도 세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코호트 효과’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하는 ‘에이징 효과’를 압도했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그 두 효과가 중첩해 나타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즉, 코호트 효과로 투표에서 진영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에이징 효과로 아예 진영 자체가 보수화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존재’는 오래 전에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는 것이다.
◇더 나쁜 아버지
조국 사태는 존재와 의식의 이 괴리를 상징한다. 민주화 세대가 그를 두둔한 것은 그것이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세대’의 특징임을 시사한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실은 보수다. 산업화의 추억에 갇힌 미련한 보수를 제치고 정보화의 흐름에 적응한 노련한 보수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비리와 성추행사건은 주로 이들이 일으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개혁의 레토릭을 자신들의 비리를 덮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벌써 정계와 관계, 방송과 신문, 시민단체와 지식인층을 망라하는 거대한 기득권의 커넥션을 구축했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 커넥션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그 압도적 헤게모니를 이용해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잠재워 버린다. 낡은 보수의 나쁜 모습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으로 체화한 것이다. 기득권을 확보한 그들은 그 커넥션을 활용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됐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됐다. 산업화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트도 한 채 갖게 해줬다. 하지만 586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 버린다.
◇보수화한 젊은이들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이 났다. 우리 세대가 아버지 세대의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소수를 제외하고,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
최근 20대의 정치적 성향이 노년층과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를 20대의 보수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 세대를 불신한다고 해서 그들이 할아버지 세대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당층으로 남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부친을 살해하려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민주화세대에게는 정치적 ‘집단’으로 조직하는 데에 필요한 서사, 즉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뤄졌고,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자본주의 서사가 통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 양극화 속에서 경제적 불안정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 모든 상황을 고립된 ‘개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만은 있지만 표출할 수가 없다.
양당 혹은 1.5당의 기득권 체제 속에서 젊은이들은 고작 선거용 홍보물로 쓰이다 버려질 뿐이다. 대안이 없을 때 남는 것은 냉소적 태도뿐.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이들이 ‘공정’과 ‘정의’라는 화두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과의 불평등은 용인해도 과정의 공정성만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진보가 아직도 가능하다면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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