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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네오섬 말레이시아령 사바주(州).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보르네오섬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세 나라가 나눠 점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말레이령인 북부 사바주(州)의 경제적 가치는 압도적이다. 말레이 주력 수출품인 팜오일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15억배럴의 원유와 3조㎥의 천연가스를 매장하고 있을 만큼 자원의 보고로 유명하다.

이런 노다지를 주변 국가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특히 필리핀이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여 왔다. 필리핀 팔라완주 발라박섬은 사바주에서 불과 80㎞ 떨어져 있다. 갈등은 ‘식민 지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800년대 사바주의 주인은 지금은 사라진 술루 술탄국이었다. 술루 술탄은 1878년 말레이를 식민지 삼은 영국 노스보르네오사에 사바 지역의 점유권을 넘기게 된다. 분쟁의 씨앗은 당시 계약서의 한 문구에서 싹텄다. 계약서에는 점유의 의미를 말레이 단어 ‘pajakan’으로 표기했다. 영어로 ‘임대(lease)’쯤으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의 해석을 놓고 양국의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말레이는 영구 양도인 ‘할양(割讓)’을, 술루 술탄을 흡수ㆍ계승한 필리핀은 일시적 차용을 뜻하는 ‘조차(租借)’를 주장한 것. 말레이 정부는 1963년 독립 당시 노스보르네오사가 사바주 권리 일체를 이양하고, 사바 주민들도 말레이 연방에 가입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국 영토라는 입장이다. 지금도 매년 5,000링깃(약 131만5,000원)을 술루 술탄 후손들에게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는 점 역시 영유권의 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역대 필리핀 정부는 말레이의 주장을 일축하고 사바주를 꾸준히 주권분쟁 지역으로 만들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8년에는 사바주를 무력으로 되찾기 위해 비밀 민병대를 육성하다가 발각된 적도 있다. 군사적 대치는 2010년대 들어 고조됐다. 2013년 2월 필리핀 이슬람 반군조직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의 지원을 받는 술루족 230여명이 사바주에 잠입, 소유권을 주장하며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전투기까지 동원한 대규모 무력 공방으로 7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2018년엔 말레이 연방법원이 술루족 관계자 9명에게 사형을 내리기도 했다.

북보르네오 분쟁은 ‘필리핀의 트럼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층 격화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2016년 6월 당선인 신분일 때부터 일찌감치 사바주 영유권 탈환을 공언했다. 지난해 8월 테오도로 록신 주니어 필리핀 외교장관은 “사바주 포기 주장은 ‘반역죄’에 해당하며 필리핀 수도를 이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내놨다.

현재 말레이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판단을 받자는 필리핀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이슈’조차 되지 않는다며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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