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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새삼(사진 양형호)

한동안 숨쉬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코로나19로 코와 입을 마스크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하루 하루 감염과 관련된 소식에 정치, 경제 소식, 뿌연 대기까지 보태어져 가슴까지 갑갑함으로 채워 가던 일상에 모처럼 숨을 틔워 준 소식은 ‘기생충’이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제목이긴 하지만 우리를 모처럼 전혀 양분되거나 비판하지 않고 한마음이 되어 응원하고 기뻐하며, 설레게 했던 단어가 그동안 그토록 혐오했던 ‘기생충’ 인 것이 아이러니다 싶습니다.

겨우살이(사진 양형호)

식물 중에도 기생식물(parasitic plant)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스스로 만드는 생산자인데 기생식물은 다른 기주식물(숙주식물)로부터 얻는 식물이지요. 변형된 뿌리인 흡기(haustoria)를 기주식물에 침투시켜 관다발까지 연결해 양분과 수분을 채어 갑니다. 가장 유명한 식물로는 겨우살이가 있습니다. 겨울에 잎이 떨어진 숲에 가면 새집처럼 달려 있는 것이 겨우살이인데 기주의 양분을 빼앗기도 하지만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도 하여 반기생식물이기도 합니다. 겨우살이는 기주 나무를 쇠퇴하게 하기도 하고, 흡기가 나무줄기에 박히면 목재로서의 가치가 낮아져 이래저래 피해를 줍니다. 예전에 겨우살이가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도 하니 혹시 기주식물이 더 이상의 양분을 제공할 수 없을 처지가 되면 거꾸로 기생하던 겨우살이가 상생의 의미에서 양분을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실험을 한 결과 서로 고사해 죽을 때까지 기주에 나누어 주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정말 얌체 같은 기생식물이라고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기생식물 새삼류에 대한 놀라운 연구결과도 있는데 새삼은 기주식물에서 단순한 양분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유전자까지 가져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자는 보통 한 종(種)이 살아남기 위해 후대에 이어주기 마련인데, 참 대단합니다.

사철쑥에 기생하는 초종용(사진 양형호)

하지만 반전은 있었습니다. 기주식물에 주는 도움은 아니지만 겨우살이에 항암 성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서양겨우살이는 이미 치료제로 개발되어 있다니 결국 사람을 살리는 식물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백두산에 가면 진시황이 찾아 헤매던 불로초라 하며 시장에서 팔리기도 하는 오리나무 더부살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철쑥을 비롯한 쑥 종류에 기생하는 초종용, 하늘에서 내려온 마비에 좋은 식물로 소문난 천마와 같은 식물들이 모두 귀한 약재여서 요즈음은 거꾸로 기생하는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천마는 참나무류를 비롯한 나무뿌리와 뽕나무버섯과 공생하며 연결되어 양분을 뽑아내고 있으니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과의 공생까지 포함된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의 면모는 그 생물이 가지는 전체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마(사진 양형호)

남이 애써 만든 것을 가로채며 살아가는 ‘기생’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섣부르게 구분했던 사람들의 삶에 켜켜이 담긴 서로 다른 이면을 만나며 이분법으로 선악을 나누는 데 익숙한 우리가 불편했듯이, 생존 방식으로만 구분했던 기생식물들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듯이, 절대로 사람을 포함한 생명에게 섣부르게 판단하고, 편 갈라서 비난하는 일은 하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모든 생각의 끝에 남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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