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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뉴스1

“미국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있겠지만 굳이 중국과 척을 지면서까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국 배치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2014년 말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국가이익을 먼저 따지는 ‘합리적 신중론’에 가까웠다. 고도 40~150km 상공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 시스템은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의 장사정포나 단거리미사일, 사드 레이더 사각지대에서 발사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요격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감안했을 터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ㆍ미사일 발사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당국자들은 “아무래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논리로 돌변했다. 그런 변화 속에 2016년 7월 사드 배치가 공식 발표됐다. 북한 미사일 방어 차원이라 했지만 중국의 반발은 거셌다. 미군의 사드 레이더 탐지 범위가 중국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경북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놓은 롯데가 중국에서 보복을 당했고, 한국 관광 금지 등 ‘한한령(限韓令)’이 실행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10월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들어가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굴욕적 ‘3불(不) 원칙’을 공표하고 나서야 사드 문제는 가까스로 봉인됐다. 겨우 숨을 돌렸지만 우리가 치른 비용은 막대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20년 2월, 다시 사드라는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이 2021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사드 성능 개선과 요격미사일 구매 등에 10억달러를 배정했다고 화두를 던지면서다. 사드 작전 반경 확대, 발사대 이동 배치, 패트리엇 시스템 연계 문제 등 아직 구상 단계 정보들이 실체보다 부풀려지고 있다. 3불 원칙과 관계 없는 사드 성능 업그레이드 정도가 논의되는데도 사안이 침소봉대 되면서 한국 외교가 또 시험대에 서게 생겼다.

논란 덕분에 처량한 한국의 신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2014년 이후 사드 갈등은 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최전선에 한국이 희생양으로 이용된 결과라는 걸 모두 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국익만을 따졌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감정이 앞섰다. 그 결과 중국에 치이고, 미국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을 이유로 ‘무조건 중국 반대’ 논리가 득세한 건 더 문제였다. 애초 사드 배치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해 갈등과 논란을 불러왔던 세력이 반중(反中) 감정 부추기기에 앞장섰다는 사실도 새삼스럽지 않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때도 정치적 이익을 노린 ‘중국 때리기’는 이어졌다. 내내 ‘우한 폐렴’을 입에 달고, 중국인 전체를 감염원 취급하는 노골적 혐오주의가 횡행했다. 무역 등 한중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은 외면한 채 관계 단절을 불사한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사드 논란 후 반중 감정으로 재미를 본 그들에게 공공의 이익은 안중에 없었다.

중국의 역량을 무시하고 한국의 독자적 힘으로 세파를 헤쳐갈 수 있다면 왜 그리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외교력을 마음껏 발휘하기에는 지정학적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는 걸 모르는 정치권 인사는 없을 것이다. 한국을 둘러싼 ‘넛 크래커(호두까기 기계)’ 사이의 호두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어느 한쪽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른 전략적 선택 원칙을 견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둑 사이에 갇혀 있지만 양쪽의 풀을 번갈아 뜯으며 힘을 길러 웅비할 것인가, 한쪽 둑으로만 올라가려다 다리가 부러지고 굶어 죽는 신세로 전락할 것인가. 새롭게 등장하는 사드 논란을 슬기롭게 헤쳐갈 해법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상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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