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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계급제 공무원제도는 적당한 인재를 뽑아서 자리와 업무를 바꿔가며 일하다가 한 계단씩 계급이 올라간다. 어느 자리에 누가 가도 그 일을 무난하게 해내는 것이 계급제 공무원제도의 장점이다. 반면 공무원 개인이 전문성을 쌓기 어렵고, 조직의 폐쇄성 때문에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어렵다. 미래사회의 급격한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계급제 공무원제도에도 이젠 혁신이 필요하다. 사진은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 합격자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면접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요새 국민들이 매일 얼굴을 보는 공무원이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말 그대로 난리통 속에서도 차분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그를 보면서 어떻게 질병관리본부장이 되었나 몹시 궁금하였다.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의사 출신, 연구관 특채로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하! 그냥 공무원이 아니었구나!

글로벌 감염병의 증가,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 국경을 넘나드는 미세먼지 등 최근 등장하는 정책 이슈들은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글로벌 수준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문제들이다. 공무원들이 전지전능한 초인이 되지 않고서는 다루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사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공무원이 답답하고 무능하다고들 안줏거리로 얘기하지만, 우리는 내심 알고 있다. 공무원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관료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막스 베버가 효율적이라고 칭송해 마지않은 관료제는 계층적 조직구조를 본질로 한다. 우리나라의 계급제 공무원제도는 적당한 인재를 뽑아서 자리와 업무를 바꿔가며 일하다가 한 계단씩 계급이 올라간다. 어느 자리에 누가 가도 그 일을 무난하게 해내는 것이 계급제 공무원제도의 장점이다. 반면 공무원 개인이 전문성을 쌓기 어렵고, 조직의 폐쇄성 때문에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어렵다. 미래사회의 급격한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계급제 공무원제도에도 이젠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분야 간 경계가 모호한 정책 문제와 혁신적 솔루션을 이어내는 ‘연결형 인재’들이 공직에서 일하는 길이 열려야 한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다양한 전공과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공직에서 일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 내각사무처의 정책실험실에서는 시민들의 생활 속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인류학자, 문제와 해법을 시각화할 수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가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나라 공무원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변화의 파고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회의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온 거버넌스 전문가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직위와 업무에서만 10년, 20년 일하며 자주 만나온 터라 서로 이심전심이었다. 그러나 2년 단위로 자리를 옮기는 우리나라 계급제 공무원 시스템에서는 다른 나라 공무원들과 네트워킹을 꿈꾸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개방형 공무원제를 도입하여 신규 공무원의 절반 정도를 다양한 경력을 갖춘 인재로 뽑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민간 경력자 채용 인원은 2011년 93명에서 2019년 186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로 늘었다. 하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반짝하고 마는 생색내기가 아니라 공공부문 체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만큼 더욱 대담한 전환이 필요하다. 적소(適所)에 적재(適材)가 배치되어야 한다.

2019년 국가공무원 9급 일반행정직 경쟁률이 114대 1, 7급 교육행정직은 229대 1이었다. 이 높은 경쟁률을 뚫기 위해 약 30여만 명의 ‘공시생’들이 시험공부에 청춘을 바치고 있다. 한 20대 청년은 말한다. 어렸을 적 꿈이 향수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었던 미대 친구도 공무원이 되었고, 화려한 스펙으로 경력을 관리하던 친구도 결국 돌고 돌아 교육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미대생이 비주얼 디자인 전공으로 공무원이 되어서, 시민들을 위한 광장을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인류학도는 사람에 대한 관찰력으로 공무원이 되어서, 시민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없을까? 데이터 과학자가 공직과 민간기업을 넘나들며 일할 수는 없을까? 계급제 공무원제도가 구축한 철옹성에 변화의 일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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