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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ㆍ현직 판사 14명 중 1심 선고를 받은 5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실상 사법농단 본류에 대한 첫 판단인 이날 재판 결과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핵심 피고인들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기소된 전ㆍ현직 판사 14명 가운데 1심 재판이 끝난 5명 중 유죄가 선고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임 부장판사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다.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 개입한 건 사실이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는 재판 업무에 남용할 직권이 없어 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도 같은 혐의로 기소된 터라 법원이 최근의 대법원 판례대로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엄격하게 할 경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

헌법이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한 것은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보장하기 위함이다. 국민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도 받지 말고 역할을 다 하라는 의미다. 때문에 특정 재판에 대해 상관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사법부 존립 기반을 크게 훼손하는 중대 범죄 행위다. 그럼에도 재판에 개입하긴 했으나 재판 절차 및 결과와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애초 남용할 직권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재판부 논리는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이런 식이면 법원 고위직들이 후배 법관들이 맡은 구체적 사건 재판의 내용과 방향에 관여해도 도덕적 비난은 받을지언정 법적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 외교부, 대형 로펌 등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역할을 나눠 재판에 개입한 사법부 최대의 치욕이다. 일단 법적 처벌은 면했지만 사법부 신뢰에 금이 가게 한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사법부는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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