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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명예 회복했으니 다음달 복직 후 명퇴”
“노조활동 죄악으로 여기는 사회풍토 바뀌어야! 정당한 노동권 보장해야!”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227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전 지도위원이 13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자택 인근에서 밝은 표정으로 고공농성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명예를 회복했으니 내달 복직 후 곧장 명예퇴직을 할 겁니다.”

높이 74m의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227일간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온 박문진(59)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전 지도위원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13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 전 위원은 농성중단이 실감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2006년 해고 통보를 받은지 14년된 그가 지난해 7월1일 새벽 4시에 노조 기획탄압 조사,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옥상에 올라갔다 12일 오후 4시쯤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지인들과 간단한 뒤풀이를 한 박 전 위원은 이날 오후 8시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엔 7개월여간 자란 긴 머리칼도 짧게 잘랐다. “축하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쇄도해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놨어요. 땅으로 내려와 꽃다발과 환호를 받으니 정말로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 전 위원은 “복직 후 곧장 명예퇴직할 계획이지만 구체적 활동은 생각 중”이라며 “영남대의료원에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고 활동을 지원해준 사람들과 연대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공농성은 녹록지 않았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바람이 많이 불어 천막이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는 “밤에 혼자 천막 안에 있으면 바람소리가 사람 소리처럼 들렸다”며 “대구의 야경은 환한데, 나만 혼자 섬에 갇혀 있는 서러운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병원 측과 교섭이 삐걱거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의 유혹도 있었다. 이 과정이 그냥 끝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노사는 지난달 31일 실무교섭에서 잠정합의 했지만, 병원 측의 반대로 조정안이 결렬되기도 했다. 그는 “병원 측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 합의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227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박문진 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13일 대구 장기동 한 카페에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공농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영남대의료원과 민주노총은 11일 사적조정회의에서 △박문진, 송영숙 해고자 복직문제 해결 △노조활동의 자유 보장 및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사 상호 노력 △민형사상 문책 금지 및 법적 분쟁 취하 등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박문진 전 위원은 내달 1일부터, 송영숙 영남대의료원지부 전 부지부장은 5월1일 무기 계약직으로 복직 후 1년 뒤 정규직 심사를 거치는 것으로 정리됐다.

영남대의료원은 2006년부터 노사갈등을 겪다가 2007년 송 전 부지부장 등 10명을 해고했다. 이들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해 8명은 징계가 경감됐으나 박 전 위원과 송 전 부지부장 2명은 2010년 대법원 판결로 해고가 확정됐다.

12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본관 70m 높이 옥상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227일간 고공농성을 하던 박문진 영남대 의료원 노조 지도위원이 농성을 풀고 옥상을 내려와 동료들로부터 꽃목걸이와 축하를 받고 있다. 영남대 병원 노사는 앞서 노사관계 정상화 방안 등에 합의했다. 연합뉴스

고공농성을 같이 시작했다 건강악화로 107일만에 먼저 농성을 푼 송 전 부지부장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송 전 부지부장은 일찍 내려가 전후방에서 고공농성을 지원해준 터라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공농성 시작 당일 “보안팀의 확인 절차 때문에 옥상진입이 어려웠지만 새벽 4시쯤 병원 13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고 털어놨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아직도 그의 고공농성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어머니에게는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떠난다고 거짓말한 뒤 농성장으로 향했다”며 “어머니가 다른 가족과 함께 농성해제 뉴스를 봤지만 수척해진 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14일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

박 전 위원은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며 “노동권이 보장되고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는 세상이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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