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동명의 원작 웹툰의 한 장면. JTBCㆍ다음웹툰 제공

지난달 31일부터 방영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방영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였다. 누적 조회수 2억뷰 이상, 매출 1위를 기록한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데다, 원작자인 조광진 작가가 직접 각색과 대본을 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원작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가 드라마화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는 소식에 원작 팬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실제 1화가 방영된 직후 “원작과 싱크로율 99%”라는 호평이 이어지며 독자와 시청자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소설, 만화 등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엔 원작자가 영상 작품의 각본 집필까지 직접 맡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원작과 2차 영상물의 장르 간 경계가 옅어지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가 올 상반기 선보일 배우 정유미 주연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귀신 쫓는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벌이는 퇴마 과정을 그렸다. 이 드라마에서도 소설 원작자인 정 작가가 직접 각본을 썼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정평이 난 정 작가가 직접 각본 작업까지 맡았다는 소식에 제작 단계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JTBC드라마로 만들어진 문유석 전 판사(왼쪽)의 소설 '미스 함무라비'와 동명의 드라마

앞서 2018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또한 원작 소설 ‘미스 함무라비’의 작가인 문유석 당시 판사가 극본을 썼다. 현직 판사가 쓴 만큼 여느 법정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디테일과 리얼리티가 담겼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법정물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민사재판을 소재로 해 법원 서기나 실무관, 참여관, 법정 경호원 등 판사 외에도 다양한 직업을 등장시켜 법원에 대한 이해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각색 등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영상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지난해 OCN에서 방영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의 김용키 작가는 드라마 방영을 기념해 외전 형식의 ‘특별편’을 따로 내놓기도 했다. 김규삼 작가의 네이버 웹툰을 기반으로 한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 마트’에는 김 작가가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예 직접 연출도 한다. 웹툰 작가 정연식은 2013년 개봉한 마동석 김선아 주연의 영화 ‘더 파이브’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이전에도 작가들이 영상물 작업을 하는 일이 없진 않았다. 김승옥, 최인호는 소설만큼이나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는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곧 끊겼다. ‘문예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장르 색채가 짙은 영화들이 상영관을 채우면서부터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각색을 맡은 김영하 작가가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야”같은 대사를 탄생시켜 대종상 각색상을 받기도 했지만, 지극히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일로 취급 받았다. 작가들의 영상물 작업은 ‘외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광진 작가의 다음웹툰 '이태원 클라쓰'(왼쪽)와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JTBC 드라마

최근 들어 이 흐름이 다시 뒤집힌 건 지금이 ‘영상의 시대’ 여서다. 예전에야 원작과 영상문법은 다르다는 이유로 원작자의 참여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글과 그림만큼이나 영상문법에도 익숙한 젊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제작진 역시 원작자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태원 클라쓰’ 땐 김성윤 감독이 조광진 작가에게 먼저 집필을 제안했다. 조 작가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만화든 드라마든 이야기를 만드는 극 형식이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서사이고, 원작자로서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은데다 원작의 부족한 점을 드라마를 통해 스스로 보완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세랑 작가(맨 오른쪽)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가운데)은 배우 정유미(맨 왼쪽)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여기엔 콘텐츠 제작, 소비 방식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단단한 원작 하나만 있으면 드라마나 영화 정도 만드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OTT, 웹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할 수 있게 됐다. 더구나 이 새로운 플랫폼들은 소재, 표현, 편성 등 기존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다. 창작자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살리는데 적합한 환경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