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브렉시트와 아일랜드섬 평화과정

입력
2020.02.06 04:30
31면
지난달 30일 런던의 의사당 광장 앞에서 유럽연합(EU)에 잔류를 희망하는 시위자들이 다양한 플래카드의 EU 깃발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런던의 의사당 광장 앞에서 유럽연합(EU)에 잔류를 희망하는 시위자들이 다양한 플래카드의 EU 깃발 등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2020년 1월 31일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다. 초국가적 민주주의의 실험장인 유럽의회에서는 1월 29일 본 회의를 통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비준했다. 유럽연합 회원국가였지만 유로를 사용하지 않았던 어색한 행위자 영국이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3년 7개월 만에 이루어진 단일유럽시장과 관세동맹으로부터의 이탈이었다. 2019년 영국경제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고, 2020년 경제성장률도 영국 중앙은행이 0.75% 정도로 하향 예측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이 되었다. 브렉시트 과정은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우파 민중주의의 광풍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평화 과정의 지체를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브렉시트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2차대전 이후 주권의 일부를 초국가적 기구에 이양하는 연합의 제도화를 매개로 진행되어 온 유럽판 평화와 번영의 길의 역진 가능성이다. 브렉시트 직후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슬픈 날”이라고 말하며 브렉시트를 “역사적인 비상경보”로 받아들였다. 연합적 평화와 번영의 길에 대한 질문은 불가피해 보인다. 브렉시트 찬성 세력들은 유럽 엘리트들이 통제 권력을 행사하는 유럽연합의 비민주성을 지적한다. 브렉시트는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는 연합적 제도의 민주적 토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브렉시트가 결과할 수 있는 분단된 아일랜드섬의 국경 통제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과 유럽연합은 열린 국경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backstop)’에 대한 협상을 해 왔다. 특히 영국의 구성원인 북아일랜드와 유럽연합 회원국가인 남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국 사이의 국경 통제가 주요한 논의의 대상이었다. 1922년 영국의 자치령인 아일랜드자유국 수립 이후 분단된 아일랜드섬에서는 폭력적 갈등이 계속되었고, 1998년 4월 평화협정인 성금요일협정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는 평화공존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물론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와 그 이외의 지역에는 갈등의 두 당사자인 친영국계 개신교도와 친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의 거주 지역을 구분하는 이른바 평화선이 돌 벽과 철제 장벽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현재 남북 아일랜드의 국경에서는 재화와 서비스가 제한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상태다.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가였기 때문이다. 안전장치에 관한 협상은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 재설정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섬 평화 과정의 산물인 성금요일협정의 보호와도 관련되어 있다.

브렉시트 날 영국 신문 ‘가디언’에 실린 한 아일랜드 언론인의 칼럼 제목은 ‘안전장치가 단지 무역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였다. 어린 시절 군에 의한 국경통제에서 느낀 공포로 글을 시작하며, 국경 통제로 야기되는 계량화할 수 없는 인적, 심리적 비용을 언급한다. 그리고 단일유럽시장과 관세동맹이 아일랜드섬의 물리적 국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의 장벽을 제거했음을 강조한다. 단일유럽시장과 관세동맹이 성금요일협정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동의의 방법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의 평화공존을 약속한 성금요일협정은 아일랜드섬 사람들에게 아일랜드인, 영국인 또는 둘 다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했지만, 브렉시트에 따른 국경 통제는 어느 한 편을 선택하게끔 강제한다는 것이다. 정당정치와 정치적 생존을 평화과정의 상위에 둘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다.

2020년 12월까지 영국은 단일유럽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하면서 유럽연합과 협상을 전개할 예정이다. 안전장치는 핵심 의제다.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의 연합적 길을 고려하고 있는 우리에게, 브렉시트와 안전장치를 둘러싼 논란은 유용한 타산지석의 사례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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